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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굿모닝몽골11 그들은 우리의 꿈을 믿지 않았다

 야고보서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2013년 가을이다. 분명히 지난 7월에 효성그룹과의 행정소송에서 승소하였지만 서울시 담당자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통보를 해주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궁금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이유를 찾기엔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중간에 사람을 통하여 알아보고도 싶었지만 마땅한 사람도 없다. 그러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주관부서를 찾아가 이유를 알아보려고 했지만 공무원들의 속성이 그런지 모르지만 그들은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페이스가 있었고 다만 우리만 속을 태우고 있었다. 우리만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알아낸 사실은 서울시에서 다시 정부부처에 몽골학교 건축을 위해 서울시가 부지를 임대해 주는 것이 맞는지부터 알아보고 있었다. 정부 부처에 질의서를 보냈다며 무조건 기다리라 통보한 것이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5년 전에 이미 합당한 이유로 예산을 잡았고, 그 예산을 집행하였으며, 다만 행정소송에 휩싸여 건축이 연기된 것 뿐 아무런 변화도 없는 상황에서 이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는 말이 아닌가?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났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도대체 5년 전의 일을 번복하자는 말이 아닌가? 정부에서 만약 불가하다고 하면 없었던 일로 하자는 심산이었다. 용납할 수 없었다.
먼저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우리 학교의 역사와 상황, 그리고 지난 5년여의 행정소송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실을 편지로 보냈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답답하고 무언가 벽에 부딪친 것처럼 막막했다. 물론 담당 공무원들에게서는 아무런 변화도 읽을 수 없었다. 오히려 더 강경한 태도로 우리를 옥죄고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마침 서울시  의원이던 박래학 의원이 생각났다. 그분은 현재 서울시의회 의장이다.
박 의원님은 우리 학교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인 분이다. 우리 학교가 자신의 지역구와 다르지만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시던 분이다. 박 의원께 부탁을 드렸다. 마침 박 의원께서 서울시 정무부시장님과 함께 만나자 한다.
며칠 후 약속을 잡아 서울시 정무부시장실을 찾았다. 주무부서의 팀장도 함께 참여할 모양이다. 대기실에서 그 주무담당자를 만났지만 그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매우 강경한 느낌을 받았다.
정무부시장실에서 박 의원님과 주무담당자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담당자는 부시장 앞에서도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지난 5년여의 소송과정과 우리 학교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주무담당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부처에 질의를 하였으니 그 답변을 보고 결정하겠노라 한다. 화가 났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만 반복하는 그 공무원에게서 나는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느끼게 되었다. 정말 복지부동의 전형이었다. 세계화와 다문화로의 변화에 대한 아무런 비전도 책임감도 없음을 보았다. 우리학교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 그리고 그러한 변화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 지의 고민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의 책임만 면하면 된다는 태도였다.
나중에 학교를 완공하고 나서 그 담당 공무원이 학교에 와서 내게 하는 말은 이랬다. 그 당시에 담당부처의 공무원들은 우리가 학교를 세울 능력이 없어 보였기에 바로 승낙해 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학교 건축을 돕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의 능력을 의심한 것이었다.
나중에 그런 의심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며 그 담당 공무원과 화해하기는 하였으나  우리는 능력도 믿음도 주지 못할 정도로 정말 형편없이 보였던 모양이다.
우리는 그런 의심과 악조건에서 학교를 시작했고 또한 학교를 지으려 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오직 '된다'는 믿음뿐이었다. 아무 것도 준비된 것은 없었지만 오직 한 가지 이 학교는 하나님이 지으실 것이라는 믿음 하나만을 갖고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하긴 우리를 믿지 못한 것은 서울시 공무원들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도 우리가 학교를 지을 수 있을지에 대하여 의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믿음으로 짓는다고 큰소리는 쳐놓았지만 문득문득 불안감이 엄습했고 또한 두려웠다. 학교 건축을 시작해 놓고 중간에 부도를 내는 경우도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어느 날 아내 이강애 교장에게 학교 건축을 포기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내 마음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들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학교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부터 학교 건축을 포기하고 지금의 작은 컨테이너 학교에서 그냥저냥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 등 수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믿음과 의심은 함께 공존한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의심하고 두려워 떠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지금 학교를 다 짓고도 나는 여전히 오락가락하기를 반복한다.

2013년 11월이 되었다. 학교건축허가가 나오지 않으니 답답한 시간이 계속되고 있었다. 행정소송에서 이기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믿었지만 세상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몇 년 전 몽골 홉스골 호수로 여행을 같이 했던 안영도 변호사께 부탁을 했다. 박원순 시장과 가깝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도와 달라한 것이다. 안변호사님이 박시장께 편지를 보내고, 나도 몇 번의 편지를 보냈다. 지루한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그 시간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시험대처럼 여겨졌다. 그 시간을 이겨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이런 일은 마지막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다.
기다리는 것이 고통이다. 5년도 기다리면서 한 달을 기다리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았다. 참으로 급한 성격 그대로다. 매일같이 확인하고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다. 여전히 담당 공무원들의 입장이 정리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담당 부처의 과장과 팀장이 찾아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담당 부처의 과장은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지만 매우 호감이 갔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다.

"드디어 건축허가가 나왔습니다."

이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하여 찾아온 것이다. 나는 얼마나 감격했는지! 그날 과장은 돌아가면서 내게 다가와 나를 꼭 안아주는 것이 아닌가!
지금도 그날 그 과장의 따뜻한 포옹을 기억한다. 참 감사하고 고마웠다. 시장님의 특별한 말씀이 있었노라고도 했다. 눈물이 났다. 이제 시작하는구나 하면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처럼 결연한 마음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말하던 건축이 시작되었다. 공무원들의 의심과 나 자신의 두려움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결정이 나 버린 것이다.
그날은 11월 마지막 날이었다. 건축업자는 박양주 사장으로 결정했다. 양평생태마을을 조성할 때 함께 일해본 적이 있어 익히 알고 있던 터다. 박 사장에게 다음 주부터 건축을 시작하라 했다. 건축위원장은 김대운 장로가 맡기로 했다. 문제는 건축비다.


시편 121 : 1-2
1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시121:2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사실 모든 문제의 출발은 돈이다. 당시 담당 서울시 공무원이 우리를 믿지 않은 이유는 돈 문제였다. 어느 날 그 공무원은 우리에게 학교 건축에 필요한 건축비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을 하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돈이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학교 건축이 한두 푼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건축에 필요한 재정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였던 것이다. 만약 학교건축을 한다고 시작은 해놓고는 중간에 돈이 떨어져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 모든 책임을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당연한 걱정이다. 그들이 나를 믿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학교건축비용이 있다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은행에서 잔고증명을 해오라는 것이다. 건축비용이 없다면 처음부터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돈을 갖고 와서 보여 달라는 것이다. 황당하지만 당연한 것이다.

"학교건축에 필요한 재정을 보여주셔야 건축허가를 드릴 수 있습니다. 나중에라도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책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지금 돈을 갖고 계십니까?"
"나는 지금 돈이 없지요. 그러나 내가 믿는 하나님이 갖고 계시니 할 수 있습니다."

웃기는 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때 나는 그렇게 답했다. 사실이었으니까. 내게 돈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학교를 짓는 것은 돈이 아니라 믿음으로 짓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거다. 그러나 문제는 믿음은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내 믿음을 믿지 않았다. 공무원이 믿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돈의 힘이다. 당장 학교건축에 필요한 재정을 증빙하지 못하면 건축을 시작할 수 없었다. 그것이 나와 그들의 차이였으며 그 문제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그 이유로 나는 그들과 다투어야 했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돈을 마련하든지 아니면 공무원들이 나를 믿게 하든지 해야만 했다.

영어 속담에 '돈이 말한다.'(Money talks)라는 말이 있다. 돈이 답한다는 것은 진리처럼 보인다. 세상은 돈으로 말하고 돈으로 답한다. 그것만을 신뢰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다. 자본주의는 돈으로 말하고 돈으로만 답한다. 그래서 하는 말이 돈이 사람을 속이지 사람이 속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돈은 힘이고 돈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신이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처음부터 공무원들이 나를 믿지 못한 것은 돈이 없어서다. 돈만 있었더라면 건축은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한참이나 고심을 했다.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이제부터는 정말 돈으로만 말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믿음을 이야기해도 그들은 그 믿음을 믿지 못한다. 사실 그 공무원도 나중에 알고 보니 교인이라 했다. 자기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며 고백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끔쩍도 하지 않고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으니 참으로 돈의 문제는 절대적인 모양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 결국 서울시장께 직접 우리의 사정을 알리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우리를 믿고 건축허가를 내달라는 간절한 편지를 보냈고 그것이 시장님의 마음을 움직였나보다. 건축허가를 받고 건축을 하면서도 돈의 문제는 내내 나를 가장 괴롭혔으니 나는 돈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한 것이다.  
 


탄    원    서
  존경하는 박원순 서울시장님께!

시정업무에 여념이 없으신 시장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저는 재한몽골학교 운영이사장 유해근입니다.
지난 1999년 12월 9일 재한 몽골인 자녀들이 그 당시 교육법으로 한국학교에 가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것이 안타까워 한국어라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으로 학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에 대한 교육이 체계를 잡아가면서 학생들의 학력인정을 위해 2005년 2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정식 외국인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몽골 교육부로부터도 인가를 받았습니다. 본교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몽골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며 1~9학년까지 85명의 아이들이 재학하고 있습니다. 현재 교실이 부족하여 컨테이너까지 들여놓고 교육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학령기의 아이들이 좁은 교실과 컨테이너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2008년 12월 시의회에서 의원발의로 몽골학교 부지 마련을 위한 15억 원의 예산을 편성하였습니다.
서울시에서 학교부지를 마련해 임대해 주면 본교에서 건축하기로 하고 일이 시작된 것이지요. 
2009년부터 학교부지 마련을 위해 ‘서울시도시계획위원회’와 서울시교육청의 ‘교육환경평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땅을 매입하게 되었으나, 땅 소유주가 행정소송을 제기해 오랜 시간을 거쳐 2012월 7월에야 몽골학교 부지매입을 위한 법적 절차가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본교는 4년 가까운 기간 동안 서울시에서 토지를 임대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건축을 위한 설계와 건축자금 마련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계약을 체결하려는 시점에서 서울시 담당부서가 외국인생활지원과에서 투자유치과로 바뀌게 되었고 해당과(투자유치과)에서는 몽골학교에 부지를 임대해 주는 것이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맞는지를 재검토해야 한다며 4개월여 시간이 흘렀고, 지금은 그 여부를 지식경제부에 의뢰한 상황이 되었기에 답답한 마음으로 존경하는 시장님께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지난 2008년 당초에 서울시에서 몽골학교 부지를 마련해 주기로 한 것은 투자유치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고 외국인생활지원 차원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 몽골아이들의 교육환경을 개선해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4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투자유치를 이끌어 낼 수 있는가를 논의하는 것은 시작 당시의 취지와 전혀 맞지 않는 것입니다.

2. 또한 투자유치 차원에서 몽골학교 부지를 마련해주는 것이 적법한가를 논의하는 것은 존경하는 시장님의 철학과 시대정신에도 맞지 않는 것이라 사료됩니다. 거시적으로 볼 때 몽골이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나라이며, 세계화와 다문화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사회에 있어 이주노동자 자녀의 교육권을 지켜주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임을 검토해서 결정해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3. 몽골학교에 부지를 임대해 주는 것은 지식경제부에 의뢰해 외국인투자촉진법에 적법한가를 검토하기보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근로자와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의 교육권을 지켜준다는 차원에서 시장님의 용단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4. 존경하는 시장님을 꼭 한번 만나 뵙기 원하오니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주십시오. 바라옵기는 무척 바쁘신 줄 아오나 본교를 직접 방문하시어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몽골아이들을 격려해주시고 만나주십시오. 조속한 시일 내에 꼭 뵙기를 간청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붙임 : 재한몽골학교 건축부지매입 추진과정)
 2012년 11월 15일
재한몽골학교 운영이사장 유 해근 목사
 


사도행전 3 : 5-6
3:5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행3:6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이태석 신부의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라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예수님이라면 교회당을 지으셨을까 아니면 학교를 지으셨을까?’라고 말이다. 나는 그 물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예수님이라면 교회가 아니라 분명 학교를 지으셨을 게다. 그것이 예수님의 생각이며 그분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한결같은 사랑의 모습이다. 일주일에 한번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엄청난 재정을 콘크리트 건물 짓는 일에 투입하는 것은 예수님의 바램이 아니다. 그분은 당신의 나라를 위한 보다 지속가능한 선교적 목적을 이루길 바라는 분이시다. 당신이 예배를 받기 위한 예배당이 아니라 연약한 자들을 위한 보다 공적인 공간을 짓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만약 예배당을 지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교회를 짓지 말고 학교 건물을 짓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온 사람이다. 예배는 학교 건물에서 드리면 되는 것이다. 어디든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예배하면 그곳이 교회다. 교회는 겉모습의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이 모이고 그곳에서 예배가 드려진다면 그곳이 어디이든 이미 교회는 만들어진 것이다. 교회와 예배는 공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자들의 믿음과 마음이 더욱 중요하다.
한국교회의 건물에 대한 욕망은 대단하다. 건물을 짓고 건물을 소유한다는 것은 목회자의 성공을 상징하는 것처럼 되어 있음으로 그 건물에 대한 욕망을 지우기는 결코 쉽지 않다. 건물을 짓고 그 건물이 사람을 모이게 하며 다시 그 건물 속에 모여든 사람들이 헌금을 하면 다시 더 큰 건물을 짓는다. 부수고 다시 짓고 하면서 자본은 늘어간다. 그렇게 반복되는 건물과 자본의 힘을 믿는 자들에게 건물에 대한 숭배는 거의 절대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혹이며 우상일 뿐이다. 나섬은 그런 교회당을 짓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공언한바가 있었음으로 나는 보이는 교회를 짓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이 학교이어야 한다면 나는 반드시 그 학교는 짓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 학교 건물에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상상만 해도 행복하고 가슴이 벅차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우리에게는 현실적으로 돈이 없었다. 학교를 짓든 예배당을 짓든 돈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니 무슨 철학이고 신학이고는 말장난에 불과했다. 당장 필요한 것은 돈이니 돈을 구해야 한다.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돈을 만들 것인가?
나는 평생 나섬의 목회를 하면서 돈 때문에 여러 번이나 수모를 당하고 모욕을 감수해야했다. 하지만 돈을 따라다니지는 않았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어째든 돈은 나를 치사하고 비겁하게 만든 것이 사실이니 돈에서 자유하지는 못했다.

우리 나섬의 모든 사역은 돈을 쓰는 사역뿐이다. 헌금을 하는 한국 교인들이 모이는 나섬교회는 나섬의 모든 사역 중 가장 마지막에 시작한 것이며 나 자신이 목회에 대한 능력이 부족하니 사실 한국인 목회에는 그다지 열정적이지 못했다. 나섬교회 이외의 모든 사역은 전부 돈이 필요한 것뿐이다. 돈을 모아 일방적으로 소비해야만 하는 사역들이니 재정의 문제는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것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들이 사회적 기업을 비롯하여 다양한 비즈니스 사역이었다. 처음에는 떡볶이 장사를 했다. 마침 아는 지인이 치즈 떡볶이를 개발했다며 소개를 하는 통에 무작정 떡볶이 장사를 했다. 두 번째는 우렁이 만두를 개발하여 만두장사도 했다. 나섬교회 신점남 장로님이 우렁이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 우렁이로 만두소를 개발한 것이었다. 여기저기 떡볶이와 만두를 팔아 그것으로 선교비를 충당하자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그 생각은 가상한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팔고 팔아도 남지 않았다. 먹는 음식이었음으로 냉동 창고를 만들어 냉동보관을 해야 했고 유통기한이 있으니 팔리지 않으면 우리가 먹어치워야 했다. 남는 것 같았는데 알고 보면 손해가 났다. 보관과 재고가 문제였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더니 그런 꼴이었다. 장사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실패다. 다시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재활용 가게와 카페와 커피였다. 지금도 나섬가게를 하고 있는데 그것이 그때에 시작한 것이다. 카페와 커피 유통도 신통치 않았다. 결국 그것들도 실패작이다. 양평에 생태체험마을을 세워 재정적 자립도를 높여나가려고 했지만 아직도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도전은 노력한 것에 비해 성공하지는 못했다.

돈에 대한 간절한 필요는 있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결코 풍족하게 채워주신 적이 없었다. 우리가 스스로 돈을 만들어 보자고 시작한 사회적 기업도 교인들의 이해부족과 당시의 여러 가지 문제로 실패하고 말았다. 2007년 처음 사회적 기업을 시작할 때만해도 한국교회에서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교회가 무슨 기업을 하고 돈을 버느냐며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욕을 하며 덤비는 사람도 있었다. 다양하게 도전을 하고 최선을 다해는 보았지만 그 어떤 것도 성공하지 못하고 망한 것들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수없이 실패했다. 나는 실패를 밥 먹듯 하며 살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았으니 그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기도 했다.

몽골학교를 짓고 싶었지만 돈은 없었고 돈이 없었음으로 공무원들은 나를 믿지 않았고 그 이유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특히 학교건물이 한두 푼으로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으로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무슨 건축을 하느냐며 포기를 유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 노력해도 안 되니 이제는 포기하자는 생각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우리가 하기에는 너무 큰일이다. 건물을 짓는 것이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힘이 들 줄은 몰랐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는 걸인과 만났다. 걸인에게는 돈이 필요하다. 그에게 목적은 돈이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돈이 없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내게 금과 은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했다. 그리고 걸인은 일어나 걷고  춤추고 뛰는 것이다. 돈과 선교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돈은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힘은 절대적이다. 나는 돈의 힘을 잘 안다. 왜 큰 교회를 하려 하는가? 돈 때문이다. 교인들을 많이 모이게 하는 한국적 성장목회의 패러다임은 결국 돈의 힘을 믿는 목회적 발상이 가져온 것이다.
교인이 많아야 헌금이 많아진다. 교인들이 많이 모이려면 다시 큰 건물이 필요하다. 그러니 반복되는 말이지만 또다시 건축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한국교회는 건축하는 목회뿐이다. 돈과 목회의 상관관계는 이렇듯 미묘하게 얽혀있다.
이런 목회적 패러다임 속에서 나는 나섬과 몽골학교를 하려했다. 돈이 들어오는 구조가 아닌 나누고 써야하는 소모적이며 비경제적 목회를 하려했으니 나는 바보다. 누구도 우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돈을 모으는 곱하기의 목회가 아닌 나누기의 목회란 고단하고 피곤하다. 이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돈이 없었고 돈은 우리에게 아킬레스건처럼 보였다. 정말 돈이 말하고 있었다. 돈은 권력이고 신처럼 보였다. 그만큼 나는 돈의 힘을 알았다. 지금도 돈은 말한다. 그러나 돈보다 더 큰 힘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 내겐 가장 큰 은혜다.

발버둥을 쳐도 돈을 만들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사회적 기업이든 비즈니스이든 나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 돈의 힘은 알지만 그 힘을 얻어낼 수 있는 능력도 없고, 길도 몰랐다. 오직 하나만 남았다. 기도다. 절박하게 기도하는 것뿐이다. 학교 건축을 하면서 매일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저를 죽여서 학교를 지어주십시오'라고 말이다.

내가 죽어서라도 학교를 지을 수 있다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절박했고 간절했다. 하루도 울지 않고 잠을 잔적이 없었다. 눈물을 흘리며 혼자서 많이도 울었다. 마음으로 기도하며 수없이 그렇게 기도했다. 내가 죽어서라도 학교를 지을 수만 있다면 내가 기꺼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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