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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판가즈와 함께 떠난 인도 선교여행 6.빠띠알라 은혜교회에서 깊은 고민에 빠지다

      대부분 불가촉천민들만이 모인다는 빠디알라 은혜교회에 갔다. 찬디갈에서 한 시간 반을 걸려 안개를 뚫고 찾아갔다. 임한중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곳이다. 달릿이라 불리는 불가촉천민들의 교회다. 현지인 목회자도 불가촉천민출신이라 했다. 딱 보아도 인도의 빈민촌인 것이 역력하다. 가난하고 낮은 계급의 약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며 그런 사람들만이 모이는 교회다. 이번 여정에 불가촉천민들의 교회를 꼭 방문하고 싶었음으로 나에게는 처음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불가촉천민집단이란 누구인가? 인도의 카스트에서도 배제된 아웃 오브 카스트다. 말 그대로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불결하다는 사람들이다. 짐승도 아니건만 사람이 아닌 동물처럼 취급받아온 가장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누군가 신도 버린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그런 불가촉천민들이 모여 사는 그들만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아팠지만 고민은 멈추지 않았다

저들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불가촉천민이라는 낙인이 찍힌 저 사람들에게 과연 예수는 어떤 존재인가? 묻고만 싶었다. ‘당신들에게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라고 말이다.

 

예수는 해방자인가? 불가촉천민들의 해방자로서 그들의 신분과 계급을 타파하고 지금까지의 모든 소외와 차별로부터 그들을 구원할 것인가?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가 인도에서 한 일이란 과연 무엇인가?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기독교는 진정 구원의 종교인가? 이 땅에서는 천민으로 살고 천국에서나 귀하게 살라는 구원의 선포가 과연 진정한 구원의 복음인가를 묻고 싶다. 마치 1930년대 이용도 목사의 부흥회 구호처럼 '()에서는 천하고 천()에서는 귀하게' 라는 식의 현실 도피적이며 초월적 구원이 진정한 구원의 메시지인가?

카스트는 복음으로도, 아니 예수의 능력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성인가? 만약 그렇다면 복음은 아니 예수는 인도에서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로 평가받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카스트는 기독교를 무력화 시켰다. 전세계에서 복음이 들어간 나라 중 인도는 유례가 없는 나라다. 사회적 계급과 장벽을 허물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가 하나이며 동등하다는 기독교적 가치가 실현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인도다. 복음이 들어간 지 2000년이 지났지만 인도에는 여전히 카스트가 존재하고 그 카스트에조차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이라는 집단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들은 인도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예수를 왜 믿고 있는가?

이 땅에서 어차피 천민이라는 주홍글씨를 극복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천국에서나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보자는 보상심리가 작동한 것인가? 교회는 인도의 사회적 불공정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가? 저항해야 하는가? 아니면 타협하고 그 카스트를 인정하며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아가야 하는가? 암베드카르와 마하트마 간디의 노선 갈등도 그와 비슷한 경우였다. 카스트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암베드카르와 카스트 안에서의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간디의 입장은 독립을 앞두고도 여전히 충돌하고 갈등했다. 지금 그들은 카스트를 헌법에서 삭제했지만 사회적 관성과 정신세계는 여전히 카스트를 버리지 못한 채 붙잡고 살아간다. 교회도 그 안에서 맥을 못추고 카스트라는 종의 멍에를 인정하고 말았다.

 

선교가 할 일은 무엇인가? 새로운 희망을 주는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의한 구조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와 가치가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전의 세상과는 다르고, 특별히 편견과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약자들에게 예수가 희망이며, 그들의 창조적 존엄을 회복시키시는 구원자라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것이 선교의 의미이고 우리가 선교적 목적을 위하여 헌신하며 우리의 재정을 아낌없이 쓰고도 아깝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다.

 

그런데 아직 그 카스트의 한계와 벽을 넘지 못한 인도의 불가촉천민의 교회에서 나는 예배라는 이름으로 앉아서 그들을 바라보며 고민한다. '당신들에게 예수는 누구입니까?'라고 자꾸만 묻고 싶은 마음을 누르면서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과연 저들에게 예수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절망하는 이들에게 남아 있는 최소한의 보상심리를 위한 마지막 선택인가?

예수가 살아 계시다면 이곳에서 무엇이라 설교하실까? 만약 나에게 설교하라 하면 나는 무슨 설교를 할까를 생각하며 한참이나 고민하고 있다. 교회 앞마당을 서성거리며 나는 불가촉천민과 복음의 능력이 어떤 상관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하고 또 고민하고 있었다. 답도 없는 고민을 하며 나는 한나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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