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몽골12 드디어 몽골학교 건축이 시작되던 날 > 노마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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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굿모닝 몽골12 드디어 몽골학교 건축이 시작되던 날

마태복음 7: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2013년 12월 첫째 주가 시작되는 날 기공예배를 드렸다. 계절은 초겨울이었지만 날씨는 화창했다. 몇 명의 인부들과 김대운 장로 그리고 박양주 사장이 참석하였고,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거동이 많이 불편하셨지만 아버지 장로님도 오셨다. 교인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건축을 시작하려는 땅 한가운데 서서 나는 말씀을 읽고 기도를 했다. 그날부터 아내는 아침 금식을 시작했고, 나는 날마다 눈물로 기도 하며 밤을 지새웠다. 단 하루도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눈만 감으면 그냥 기도가 나왔고 '하나님 아버지!'를 애타게 불렀다.
무슨 수로 이 넓은 땅에 학교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한숨만 나왔다.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생은 하지도 않았을 것을 하면서 후회하는 마음도 생겼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 믿음으로 도전하고 싶은 마음과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겨났다.
망해도 본전이라는 생각, 지금까지 치열하게 싸워 얻은 과정이니 억울해서라도 반드시 학교를 짓겠다는 오기도 생겼다. 믿음도 오기와 융합될 때에 역사가 일어나는가 보다. 그런 믿음과 오기로 공사를 시작했다. 나섬 교인들에게는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시는지를 바라보자고 말했다. 그렇게 말해 놓아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먼저 선포하고 기다리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믿음의 고백이 우선이다. 하나님도 어찌하실 수 없도록 못을 박고 싶은 마음에서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말이 삶보다 우선일 수 없지만 몽골학교 기공예배를 드리던 날에는 공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있을 것이라고 먼저 말로 고백해 놓았다.

그날 나는 세 가지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를 했다. 먼저 학교 건축이 마무리될 때까지 주변에서 부정적 여론이 일어나거나 어느 누구의 방해도 없기를 기도했다. 간혹 구청이나 시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므로 그 문제도 걱정이 많이 되었다. 특히 그 땅은 풍치지구다. 아차산의 자연녹지 위에 학교를 짓는다 하면 분명 환경론자들의 민원과 훼방이 있을 것이라 예상되었기에 그 기도가 가장 먼저 나왔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학교 공사가 시작되고 마무리될 때까지 그 어떤 방해나 민원도 제기되지 않았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광진구청장님은 나에게 힘을 실어 주셨다. 구청에서도 어떻게든 도와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공사하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많은 분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 기도제목은 2014년 9월 1일까지 공사가 마무리되어 준공검사까지 나오는 것이었다. 몽골의 학제에 따르면 새 학년은 그해 9월 1일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날을 넘어버리면 새 학년을 시작할 수 없다. 그동안 초중학교 과정까지만 있던 우리 몽골학교가 새 교사를 짓게 되면 고등학교 과정까지 개설하기로 계획이 되어 있었다. 새 학년을 제 때에 시작하려면 반드시 9월 1일에 준공검사가 나와야 고등학교 과정의 학생들을 교육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공사를 담당하는 김 장로님과 박 사장에게 몇 번이나 준공날짜를 맞추어야 한다고 다짐을 받았다. 터 닦기를 시작하고 불과 아홉 달 만에 학교를 지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아홉 달이다. 연건평 900평의 학교건물을 아홉 달 만에 지으라는 것이다. 내 말을 듣던 박 사장과 김 장로님은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입술만 깨문다. 강하게 압박하는 내말에 반기를 들을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였을까. 그들 또한 그렇게 미쳐서 일을 시작했다. 정말이지 미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세 번째의 기도제목은 결국 돈 문제다. 돈이 있어야 학교를 짓는 것이 아닌가? 건축이 진행되면서 그 공정에 맞추어 공사비를 내기로 했으니 당장 돈이 필요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돈을 만들어 공사비를 주어야 한다. 공사가 건축하는 사람들의 몫이라면 돈 문제는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한다. 어디서 돈을 구할 것인가? 돈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돈이 가장 많은 곳은 기업이라 말한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이 가장 돈이 많다는 정보다. 삼성에 줄을 대보기로 했다. 삼성이라면 이정도의 학교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라 판단했다. 삼성의 사회공헌팀을 연결하여 학교 이야기를 한다. 혹시 몽골학교 건축을 지원할 의사가 없는가 물어본다. 담당자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하고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한마디는 자기들  회사의 방향과 다른 차원의 일이라 했다. 방향이 다르다는 말에 공연히 심술이 났다. 이 방향이 다르다는 말은 나중에 다른 어떤 교회에서도 들어야 했다. 다른 기업들에도 도움을 청하여 보았지만 똑같은 답변만을 들었다. 기업에서 후원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교회다. 그래도 교회가 우리를 돕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희망을 걸었다. 한참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차에 마침 분당의 큰 교회 담임목사님이 설교시간에 어느 교인이 40억 원을 가져와 필요한 곳에 쓰라했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그 목사님께 연락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우리가 필요한 돈이 딱 40억 원이니 이는 우리 학교를 지으라고 하시는 돈일지 모른다는 착각 아닌 착각을 하면서 편지를 썼다. 몽골학교에 대한 내용과 절박한 이야기를 담아 정성스럽게 편지를 보냈다. 주변의 몇 분에게는 그 목사님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도 하였다. 만약 그 교회에서 허락만한다면 우리 학교건축은 한방에 끝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하지만 편지를 보내고 한참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담임목사님 메일 주소를 알아내 편지를 다시 보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그 교회 역시 자신들의 사역 방향과 달라 미안하지만 도울 수 없다는 것이다. 방향이 달라 도울 수 없다는 말에 화가 났다. 방향이 다르다는 말의 의미에 대하여 나는 의심을 했다.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도 방향이 있나 싶었다. 어려운 아이들 돕기 위해 학교를 짓자는데 무슨 방향이 달라 도울 수 없다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방향이 세워져 있다면 왜 설교시간에 그런 설교는 해가지고 공연히 빈 가슴에 바람을 넣는가 묻고 싶었다. 자기들 방향에 맞추어 돈을 쓰려면 공개적으로 자랑을 하지 말든지...

건축하는 박 사장은 어김없이 한 달에 한 번씩 건축비를 계산해서 내 놓는다. ‘이번 달에는 몇 억’이라는 영수증을 받는 날이면 나는 도망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도망도 못 간다. 가고 싶어도 혼자 나갈 수 없는 내 사정을 누가 이해할 수 있으랴.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무실 안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내 신세를 한탄한다. 어디서 돈을 만들어 건축비를 댈 수 있을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내가 사는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융자를 받는 거다.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더 이상은 다른 방법이 없으니 집을 내놓자고. 아내는 말없이 나만 쳐다본다. 전에는 그것만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하던 아내도 학교 짓는 문제 앞에서는 꼼짝없이 나를 따라온다. 조그만 집 한 채로 얻을 수 있는 융자란 언 발에 오줌 누기 같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래도 한 달은 그렇게 버텨본다. 또 다음 달이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나는 잠을 이룰 수 없다. 세상의 그 많은 돈은 어디에 있을까 하면서 곰곰이 생각을 한다. 그리고 기도를 한다.
매일 밤 나는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를 했다. '차라리 나를 죽이고 태워서라도 학교를 짓도록 도와주십시오. 다른 방법이 없다면 제가 죽겠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을 수 있다면 짓고 싶었다. 우리 아이들이 컨테이너가 아닌, 조금은 나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기를 바라며 눈물로 기도를 했다. 밤새 울면서 기도를 하다 잠이 깨면 아침에는 눈이 퉁퉁 부어올랐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 생각지도 않았던 분에게서 건축비는 어떻게 되어 가느냐며 연락이 온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난다. 한푼 두푼 모이는 돈이 적지 않았다. 다 기억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한 달 한 달의 건축비가 채워져 갔다.

한 번은 사모님 한 분이 뉴라이프 비전스쿨에 참여하시면서 우리 학교를 짓는 일에 관심을 가져 주셨다. 어느 날 사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 유 목사님, 혹시 오늘 오후에 종로에 있는 ◯◯아파트에 오실 수 없나요? 어느 권사님 한 분이 목사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세요."

그날 오후 아내와 종로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아파트 골목 안으로 들어가니 가난한 임대아파트임이 느껴졌다. 어딘가에서 아이들 우는 소리가 들리고, 열어놓은 아파트 문을 통하여 진한 청국장 냄새가 진동을 했다. 좁은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역시 작은 임대 아파트다. 더운 여름날이었다. 안에서는 빈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마침 사모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사모님이 내 손을 어느 권사님의 손으로 이끈다. 일어날 수도 없을 만큼 힘이 없고 병들어 앉아 계신 권사님이다. 연로하신 권사님은 평생 홀로 남의집살이 하며 살았다 한다. 자식도 없고 남은 가족도 없다 한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며 ‘제가 유목사예요.’했다. 권사님은 내 손을 잡고 그냥 울기만 하신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도 그냥 눈물이 난다. 왜 우는지 몰랐지만 그냥 그 권사님의 거친 손마디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늙으신 권사님이었다. 박연신 권사님이란다. 박 권사님은 당신이 평생 모은 돈이라며 봉투 하나를 건넨다. 천만 원이란다. 천만 원...
권사님은 그 돈을 학교 짓는 건축비에 보태라 하신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눈물이 난다. 얼마나 고생해서 번 돈일까를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박 권사님은 당신의 전 재산인 천만 원을 왜 내 놓으셨을까? 나라면 과연 그렇게 했을까? 정말 몽골학교 건축의 의미를 알고는 계시는 걸까? 나는 선뜻 그 돈을 받을 수 없었다. 한참동안 권사님의 손을 잡고 울기만 하였다. 박 권사님과 돈 천만 원을 두고 그저 한참을 울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지금도 일어난다. 돌아보면 어떻게 그 많은 돈이 모아져 건축을 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바자회를 하고, 음악회도 하고, 주변의 많은 분들이 관심 갖고 도와주신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게 많은 돈이 만들어진 것은 기적이다. 그건 분명히 오병이어의 기적이었다.  
몽골학교 건축을 앞두고 세 가지 기도 제목으로 기도를 시작했는데 건축이 완공되던 날, 그 모든 것이 이루어졌음을 깨닫는 순간 나와 아내는 깜짝 놀랐다. 학교가 완공되어 준공검사가 나고, 교육청으로부터 이전허락을 받고, 고등과정의 학생들이 새롭게 입학을 하고... 우리의 기도제목이 모두 이루어졌다. 기적처럼 모든 기도가 이루어졌다. 할렐루야!

 

요한복음 6:1-13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몽골학교의 건축을 생각하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사실인 것을 믿게 된다. 계산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인간의 계산이란 얼마나 이성적인가? 우리의 이성은 합리성과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계산하고 판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으면 감히 도전할 수 없다. 무모한 도전은 쓸데없는 에너지만 소모하기 때문이다. 몽골학교의 건축을 하면서 힘이 들고 고통스러웠던 것은 바로 그 이성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실 나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고 덤비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때가 있었다. 할 수 있다는 믿음보다 무조건 해야 한다는 당위가 더 강하게 나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막상 건축을 시작하자마자 가장 힘이 들었던 것은 물론 건축비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였다.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정도의 건축비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의 건축비는 내가 상상하고 모금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미 내 능력을 초월한 엄청난 것이었으니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그저 기도하고 기다리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때에 만난 분이 박 권사님이다. 박 권사님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는 강력한 확신을 갖게 하는 계기였으니 말이다.


마가복음 12:41-44
예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예수께서는 오병이어와 과부의 두 렙돈 헌금 이야기를 통하여 돈은 양이 아니라 질적인 가치를 가질 때에 그 크기가 결정된다고 가르치셨다. 돈에 대한 우리의 선입관은 많고 적음으로 돈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돈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라고 가르치신다. 어느 것이 더 많은 가가 아니라 어떤 헌금이 더 가치가 있는가를 보여주시고 가르치신 것이다. 박 권사님에게 일천만원의 헌금은 전부였다. 권사님이 평생 남의집살이를 하면서 번 돈의 마지막 남은 돈이다. 그러니까 그 돈은 박 권사님에게는 전부다.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드린 것이니 그것은 그 권사님의 생명이며 마지막 기댈 언덕 같은 것이다. 그런 돈이 몽골학교 건축을 위하여 드린 것이니 그 돈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박 권사님은 오병이어와 두 렙돈의 헌금 이야기를 삶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나눔이 얼마나 위대한 기적을 만드는지는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오병이어는 결국 예수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나눔이 기적을 만들고 그 작은 나눔의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발적 나눔과 헌신이 세상을 바꾼다. 나는 몽골학교를 지으면서 그 교훈과 진리를 배웠다. 작은 나눔으로 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후로 몽골학교의 건축은 더 이상 내게 문제가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음으로 나는 그 이전과는 다르게 마음을 놓고 그냥 하나님의 도움만을 구할 수 있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의 사랑과 나눔이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하여야 한다. 잊을 수 없는 분들이 너무도 많다. 다 언급하고 기록하지 못함을 미안하고 죄송하게 생각하면서 몇몇 분을 소개하고 싶다. 먼저는 나섬교회 성도들이다. 나섬의 성도들이 없었다면 우리 몽골학교는 건축할 수 없었음이 분명하다. 두 번째는 크고 작은 헌금으로 건축을 도와주신 분들이다. 그분들 중 어 권사님이 계시다. 어 권사님은 정말 우연히 만나게 된 분이다. 내가 어느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예배를 마친 후, 그동안 저술한 책을 판매할 기회가 있었는데 권사님께서 그 중 '노마드 예수'라는 책을 구입하셨나 보다. 권사님은 그 책을 더 사기 위해 우리 공동체에 찾아오셨고, 그 후로 정말 큰 사랑과 후원으로 우리 건축을 도우셨다. 권사님은 지금도 몽골학교의 운영과 나섬의 외국인 지도자 신학교육, 역파송 선교 등 많은 사역에 도움을 주고 계시다. 또 한 분의 동역자는 ‘시냇가 심은 나무’ 집사님이다. 그분의 이름을 굳이 여기 기록하지 않음은 내가 그 집사님을 만날 때 그렇게 익명으로 만났기 때문이다. 거의 십여 년 전 몽골학교가 광장중학교 후문에 있었을 때 침수로 인하여 나섬센터 건물이 큰 피해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해 추석날 엄청나게 내린 비로 인하여 갑자기 물이 불어나 하수구가 막히고 그것이 우리 선교센터를 덮쳐 지하실로부터 1층까지 모든 곳이 침수 되었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손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완전히 침수가 되어 모든 것이 한 번에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그 피해 소식이 한 기독교방송에 보도가 되었고 그 뉴스를 들은 집사님이 내게 전화를 하셨다. 피해복구를 위하여 조금이라도 헌금을 하겠다고 말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는 전화하시는 집사님의 이름이라도 알려달라고 하였으나 그 집사님 왈 '저는 날라리 집사예요'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저장하게 되었는데 이름을 모르니 그냥 날라리 집사라고 저장을 해 둘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그 집사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었을 때에 날라리 대신 시냇가 심은 나무 집사라고 저장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그 집사님을 이름 대신 시냇가 심은 나무 집사님이라 부르게 되었다. 집사님은 가구공장과 가구도매업을 하셨는데 그 만남이 우리 공동체와 몽골학교에 얼마나 큰 기적을 만들어 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기적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간증거리이다. 지금 우리 학교의 모든 책걸상은 물론이고 교사들의 교무실과 내 사무실의 모든 가구는 그 시냇가 심은 나무 집사님이 기부하고 후원한 것들이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당장 불행한 일이 일어나고 고난이 이유 없이 찾아와도 그것을 새로운 만남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인생은 그런 반전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누구도 우리의 삶을 규정할 수 없다. 나는 수많은 고난이 오히려 새로운 은혜의 통로가 됨을 수없이 경험했다. 내 눈의 시력이 떨어진 것도 은혜였음을 알게 되었고, 연약한 나그네를 섬기는 목회자로 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소중한 체험을 여러 번 하였다. 홍수피해도 새로운 기적을 보여주시려는 만남으로 바꿔주셨으니 어찌 불행만 있고 고난만 있겠는가?

또 한분은 신현규 목사님과 그 교회의 소중한 성도님들이다. 신현규 목사님은 정말 내게 큰 감동을 주신 분이다. 지금은 함께하는 교회의 담임목사로 계시지만 할렐루야 교회의 부목사로 계실 때 헌신적이고 진정성 있는 사랑을 나누어 주신 분이다. 목사님과 더불어 나섬과 몽골학교를 섬겨주신 박 집사님과 백 권사님, 김 권사님, 이 권사님 등 정말 고마우신 분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외에도 이름 없이 몽골학교 건축에 참여하신 많은 분들이 계시다. 모든 후원자님과 동역자님들께 지면으로나마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린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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