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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굿모닝몽골17 몽골에 통일을 준비하는 평화캠프를 만들자

에베소서 4:1-6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    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2000년도부터 나는 몽골에 탈북자 평화캠프 건립을 생각했다. 나섬이 왜 생뚱맞게도 탈북자인가 묻는 이들이 있지만, 탈북자와 이주민 나그네의 관계를 안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2000년도에 나는 북한의 두만강을 거쳐 중국의 연길과 흑룡강의 하얼빈을 경유해 동몽골 초이발산이라는 곳으로 이어지는 탈북자 루트를 알았다. 당시 북한 정치보위부 출신 북한 이탈주민이 그 루트로 몽골에 넘어와 우리가 울란바토르에 거처를 만들어 준 적이 있었으며, 그때부터 탈북자와 함께 하는 평화캠프를 생각해 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몽골과 북한은 매우 밀접한 외교관계를 갖고 있다. 몽골은 1921년 중국으로부터 독립해 소련다음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고, 해방 후 북한과는 두 번째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지금도 울란바토르 외곽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의 북한 고아들을 위한 고아원의 자리가 남아있다. 그만큼 북한과는 형제국가처럼 가까운 사이다. 지금이야 경제적으로 남한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1990년 우리와 외교관계 수립을 하기 전까지는 북한이 가장 가까운 우방이었다. 그렇다보니 지금도 몽골의 외교관 중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는 대부분 북한의 평양에 근무했거나 김일성 대학 같은 북한의 대학에서 유학을 한 사람들이 많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사회에 유입되는 이주민과 북한 이탈주민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군목을 전역하고 1990년 9월, 단신으로 유럽에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당시 독일의 수도였던 본과 쾰른, 하이델베르크와 뮌헨 등을 두루 다니며 독일 통일의 현장을 체험한 적이 있다. 그 후 독일 통일과정에서 드러난 이주민과 동독이탈 주민들 간의 갈등과 사회적 문제에 대해 관심 갖고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는 과정에서 동독 전체인구의 약 8%가 동독을 떠나 서독를 비롯한 인접국가로 탈출하였다. 당시 서독과 동독의 국민소득의 비율은 약 4:1이었다.
이 정도의 경제적 격차에서도 동독의 인구 중 8%가 동독을 떠나니 독일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만큼 국민의 경제적 차이는 이탈을 만들어내고, 이탈하는 국민을 막지 못하니 통일이 되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어떠한가? 남과 북의 경제 격차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그만큼 남한이 잘사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에 들어와 살고 있는 북한 이탈주민은 3만 명이 조금 넘는다.
나는 몇 년 동안 탈북자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잘못하다간 큰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북한의 경우 경제적 격차를 고려하지 않고 인구의 8%만 적용한다 하더라도 그 숫자는 200만 명이다. 북한에서 이탈할 주민의 숫자가 200만 명이라는 것이다. 약 3만 명의 탈북민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200만 명의 탈북민이 들어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독일은 통일 후 동독주민의 일자리와 주택문제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동독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갈등과 충돌이 일어났고, 극우민족주의가 득세하였다. 소위 네오나치즘(Neo-Nazism)이라는 부정적 민족주의가 생겨난 것이다. 외국인과 이주민에 대한 방화와 테러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 문제는 독일이 통일된 지 거의 3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독일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유럽은 시리아 내전과 이라크의 IS(Islamic State)를 부르짖는 자들을 피해 유럽으로 흘러들어오는 난민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 한가운데 독일이 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동독 출신의 여성 정치인이다. 그녀는 난민 문제에 대하여 매우 열린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녀가 동독 출신이기도 하지만 탁월한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이주민들로 독일을 채워야 더 큰 발전이 있을 수 있다는 역사인식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통일과정에서 드러난 사회적 갈등과 사회발전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는 독일을 보면서 나는 이 문제를 우리에게 대입해 보았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북의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이뤄야할 역사적 과제다. 통일에 대한 여론보다 통일이 가져다주는 의미가 더 크다. 반드시 통일은 이루어져야하고 이루어질 것임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세계사에서 더 큰 민족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전제이기 때문이다. 분단의 고착화는 더 이상 우리를 세계적 국가로 키워줄 수 없다. 분단은 절대적 한계다. 분단의 극복이 우리를 강한 국가로 만들어주는 필수조건이다. 그리고 탈북자의 문제는 통일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결해야할 과제다. 이 문제를 풀지 않고는 통일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3만 명이 조금 넘는 탈북자 문제를 보라. 이 정도 숫자의 탈북자도 품어내지 못하는 우리의 상황을 보라. 더 이상 남한에서 살 수 없다며 다시 북으로 돌아가려 하는 탈북자도 있다. 어떤 탈북여성은 시골의 티켓다방에서 매춘을 하며 살아간다. 얼마 전에도 보도된 것처럼 탈북자들 중 어떤 이들은 극우단체의 로봇으로 전락해 관제데모에 일당 2만원을 받고 동원되기도 한다. 어처구니없는 탈북자들의 모습이다. 탈북자 3만 명 시대의 현주소다.
그런데 탈북자 200만 명이 들어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곳곳에서 못살겠다고 탈북자들이 자살을 할 것이고, 범죄에 이용당하기도 하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데모가 일어나는 등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처진다. 남한의 생각 없는 이들은 무슨 통일이냐며 통일반대 데모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이주민들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고 세계화와 다문화를 반대하는 이들이 생겨날 것이다. 이민자들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한다는 역사적 경험을 뒤로하고 우리는 고립과 폐쇄의 길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시나리오는 탈북자와 이주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모순이며 딜레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해결할 수 있는 통일의 길을 모색하여야 한다.
통일은 준비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재앙이며,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 될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개성공단의 폐쇄 결정 때문이다. 개성공단은 경제협력의 공간을 넘어 통일학교의 의미를 갖고 있다. 통일을 연습하고 대비하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검증하고 훈련해보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우매하고 즉흥적인 결정을 했다. 이제 더 이상 개성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개성시대는 막을 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사 정권이 바뀐다 해도 누가 개성에 들어갈 것인가? 아무도 갈 사람이 없다. 들어가면 망한다는 학습은 이미 모든 것을 끝나게 했다.
개성시대를 대체할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 그곳이 바로 몽골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몽골은 북한과도 남한과도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으니 이 관계의 줄을 긍정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네 번째의 이유는 현재 탈북자의 상당수가 몽골을 경유하여 들어온다는 현실적 인식 때문이다. 현재 몽골에는 한국 교민보다 북한의 교민이 더 많다. 우리 교민이 약 3천 명이라면 북한 노동자들은 약 칠천 명에 육박한다. 물론 북한 노동자들은 외화벌이를 위하여 몽골로 들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순수하게 탈북하여 우리나라로 들어온 사람들 중 약 30%가 몽골을 경유한다. 그 경로는 북한에서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넘어 중국의 고비사막을 지나 몽골로 들어는 경우다.

위의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볼 때에 몽골의 탈북자는 몽골에서 남쪽으로 올 것이 아니라 그대로 그곳에 남아 새로운 평화 공동체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무조건 남쪽으로 들어오기 보다는 몽골에서 먼저 통일을 준비해 보는 게 효과적이고 경제적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경제적 자립은 필수조건이다. 경제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인프라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탈북자들만 남아 있으라는 것은 아니다. 남쪽의 교회와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목회자와 은퇴자, 청년들과 신학생 등 북한선교를 꿈꾸는 다양한 이들을 동참하게 하는 것이다. 남한의 교회는 물론이고 소위 공적개발원조(ODA)의 지원금도 보내는 것이다. 통일을 위한 인프라를 만드는 일에 그 정도의 재정은 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쪽으로 들어와 생길 수 있는 어려움을 선제적으로 해결하고 통일을 공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몽골초원에는 우리 몽골학교에 세워진 햇빛발전소의 몇 십 배가 되는 거대한 발전소를 세워 에너지 자립을 이루어야 한다. 거기서 빵을 굽고, 버섯을 키우며 수백 통의 벌통으로 야생화에서 꿀을 따게 하고, 초원의 한쪽에서는 유정란을 낳는 닭들을 키운다. 에너지 자립은 지하수 개발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그 지하수로는 공동 세탁실과 샤워장을 만들 수 있다. 초원에 스프링클러를 돌려 나무를 심고 초지를 조성한다. 학교가 세워지고 복지센터가 만들어지면 탈북자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통일 학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전문적인 기술을 가르치거나 새로운 직업도 만들어 볼 것이다. 그러면 머지않아 창조적이며 선교적인 기업이 초원에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건 꿈이다. 그러나 꿈이 현실이 된다면 그 꿈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나섬과 몽골학교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비전을 갖고 있다.
몽골학교는 몽골을 설득하는 지렛대다. 몽골은 통일을 지원하는 징검다리다. 내 작은 헌신과 비전이 세상을 바꾸고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내는 일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성공한 삶을 산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생각을 키워왔고 지도에 그림을 그리며 상상력을 키워왔다. 몽골학교를 통해 몽골아이들을 공부시키고 그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면, 언젠가 내 꿈도 덩달아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
몽골에서 찾아오는 지도자들과는 좋은 관계를 맺으려 했고, 그들에게는 농담처럼 내 꿈을 이야기 했다. 몽골의 국가인권위원장인 대법관에게도 내 꿈을 말해 주었고, 울란바토르 시장에게도 제안을 했다. 아직은 때가 이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하고 찾으며 두드리라 하시지 않았던가. 우리 주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이니 그대로 살련다. 그러면 언젠가 문이 열리고 나아가 우리 아이들이 몽골의 지도자가 되는 날 내 꿈은 현실이 될 것이다.


마태복음 7:7-8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7:

2017년 4월, 드디어 나섬에서는 몽골로 평화 선교를 위한 선교사를 파송했다. 오래전부터 몽골선교에 헌신해온 허성환 목사님을 몽골 평화캠프 사역자로 파송한 것이다. 허 선교사님은 이미 몽골에서 10년간 농업선교사로 사역을 해온 경험을 가지고 있었음으로 그의 평화 선교 사역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특별히 우리는 울란바토르 외곽의 거르더크 교회 터에 평화 선교센터를 세우기로 했다. 거르더크 지역은 과거 구소련의 공군 비행장이 있었던 곳으로 한때 폐허로 전락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울란바토르시가 외곽으로 확장되어 가면서 주목받는 지역이 되었다. 이 모든 상황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만 설명이 가능해 진다.
2000년 초기에 거르더크라는 곳에 교회를 세울 때만 해도 나는 그 의미를 몰랐다. 왜 하필이면 거르더크인가라고 몇 번이나 물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린 버려진 땅 거르더크를 바라보면서 지금의 몽골 평화캠프를 상상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오직 사람이 없는 곳에 왜 교회를 세워야 하는가만 물었을 뿐이다. 그때에 마련한 땅의 부지가 3천 평이 넘는 넓은 곳이었음으로 지금에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얼마 전 다녀온 거르더크는 천지개벽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큰 도시로 발전하고 있었으며 거르더크 교회의 터는 얼마나 중요한 공간이 되었는지 참으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오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땅이 거르더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정도의 공간이라면 작은 평화 선교센터를 세울 수 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부터 평화 사역이 이루어질 수 있다.
통일과 평화라는 선교적 의제는 몽골학교를 하면서 주께서 주신 비전이다. 보이지 않는 통일과 평화의 사역은 어렵겠지만 감당하고 싶다. 몽골의 평화캠프 건립은 언젠가 우리 조국과 동북아 평화 공동체를 위하여 크게 쓰임 받는 날이 올 것을 믿고 시작하는 일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몽골학교와 나섬공동체의 사역이 통일과 평화라는 선교적 의제와 연결되어 있을 줄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나는 우연히 이주민 사역의 목회를 하게 되었고, 이주민 사역을 하다가 우연처럼 몽골 학생들을 만나 그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그 사역이 여기까지 성장하여 지금에 이룰 줄은 나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뿐만 아니라 몽골이 우리의 통일과 이렇게나 깊은 관련을 맺을 줄 누가 알았을까? 몽골이 사회주의 국가로 71년 동안 존속하다가 우리와 외교관계를 맺고 북한과 남한의 분단된 나라를 이어주는 다리가 될 줄 어찌 상상할 수 있었을까?
작은 몽골학교가 몽골이라는 국가를 우리와 이어주는 소중한 다리역할을 할 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몽골을 알게 되었고 몽골을 더욱 사랑하면서 몽골에 교회를 세웩 되었다. 그 교회중 하나가 거르더크교회다. 그 교회가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20여년이 흘러 지금 그 교회 터 위에 평화 선교센터를 세우자 하니 이게 무슨 우연인가 말이다. 우연은 없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있을 뿐이다. 필연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오묘한 계획 속에서나 설명이 가능한 일들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마침 몽골에 탈북자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북한 노동자들이 몰려들고 있으니 그곳이 평화 선교의 거점이 아니고 무엇인가?
몽골의 역사적 사회문화적 배경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역사는 흘러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삶이다.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내가 몽골문화원을 세우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주민 선교사역자가 웬 몽골문화원인가? 그러나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목적이 있었다. 몽골문화원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 몽골 문화원이라야 몽골에 평화 사역의 주체로 슬며시 다가 설 수 있다. 통일과 평화라는 예민한 주제를 몽골에 갖고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단체가 문화원이라는 조직이다. 특별히 몽골정부로부터도 인가를 받은 조직이 아니던가? 돌아보면 정말 우연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우연들이 이렇게 모여 필연의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마치 작은 세포가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어 가듯 우리안의 모든 사역들이 평화와 통일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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