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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굿모닝몽골18 열등감없는 변방성이 역사를 바꾼다

창세기 45:3-8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이 애급에서 형들과 재회하는 장면은 감동 그 자체다. 동생을 장사꾼들에게 팔았음으로 요셉과의 급작스러운 만남은 거의 멘붕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순간 요셉의 한마디는 압권이다. '근심하지도 한탄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이 당신들을 구원하시려 나를 먼저 애급에 보내신 것입니다.'라는 고백을 들어보자.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삶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마지막 순간이 더 중요하다. 현재 아무리 잘산다고 해도 마지막 순간에 얼마든지 반전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겸손하게 하늘의 뜻을 묻고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사는 자들에게 현재의 고난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언젠가 그 섭리 가운데 선한 뜻이 목적을 이루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도 함부로 편견이나 차별의 아픔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언제나 요셉을 생각하며 나그네들을 섬기려 했다. 특히 몽골 아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으며 교육시키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어떻게 교육을 시키는가에 따라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가능성과 희망이 주어진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조심하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나는 매우 평범한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그리 큰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선생님에게 주목받는 학생도 아니었다. 어느 날 기술시간에 선생님이 맨 앞자리에 앉은 나에게 무슨 오해가 생겼는지 나를 담임선생님에게 데려다 주면서 혼을 내라하셨다. 담임선생님은 우리학교에서도 무섭기로 소문난 분이셨음으로 나는 죽었구나 싶었다. 당시 국사를 가르치셨던 선생님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선생님의 별명은 기억이 난다. 선생님의 별명은 '해골'이었다. 해골 선생님에게 한번 맞으면 거의 죽음이었음으로 나는 공포를 느끼며 교무실에 끌려갔다.
그런데 담임선생님께서 그때 내게 하신 말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부드러운 모습으로 살짝 웃으며 하시는 말씀이다.
 
"해근아. 나는 너를 믿어. 기술 선생님이 너를 오해한 거지? 나는 너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아마 선생님이 너를 오해한 것 같구나. 괜찮다. 가라."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인생이 바뀌었다. 아마도 내가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나는 역사를 공부했을 것이다. 그 후로 나는 국사시간에 무조건 만점을 받았다. 우리 담임선생님이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시는 것을 알았음으로 국사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아예 국사책을 달달 외우기까지 했으니 선생님의 말 한마디는 내 삶을 바꾼 것이다.

사람의 운명은 말 한마디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해골 선생님은 왜 나를 그렇게 좋게 보셨던 것일까? 무척이나 평범하고 탁월하지도 않았던 나를 말없이 사랑해 주셨던 것을 기억한다. 참 고마운 선생님이다.
가끔 나는 그때를 생각하며 지금의 몽골학교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한다. 아내에게는 그때의 이야기를 해주며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선생님이 아니라 영원히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선생님의 존재는 그맘때의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 한마디를 먹고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21세기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오바마가 등장한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이주민들로 만들어진 나라다. 그러나 이주민이라고 누구나 주류가 되고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는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하와이 출신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바마가 어릴 적에 하버드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며 어머니와는 이혼을  하였고, 오바마의 어머니는 인도네시아 사람과 재혼을 하였다. 그들 사이에서는 딸 하나가 태어났으니 오바마에게는 아버지가 다른 여동생이 생긴 것이다.
오바마가 6살 때 그 가족은 모두 인도네시아로 이주를 하게 되었고, 오바마가 10살 때 인도네시아 선생님이 오바마의 미래 꿈이 무엇이냐 물으니 그는 대통령을 할 것이라 대답했다 한다.
그 후 오바마는 방황과 고민을 했지만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드디어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바램이 오바마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 몽골학교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 중 잊지 못할 아이 몇 명 있다. 그 중 한 아이가 어츠키다. 어츠키는 어릴 적 엄마를 따라 한국에 온 아이다. 엄마는 우리 학교 수학 선생님인데 얼마나 뛰어난지 우리 학교 선생님 중 가장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엄마를 닮아서인지 어츠키도 무척 똘똘하다. 놈은 내가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더듬대며 밖으로 나가면 나를 보자마자 뛰어와 내 손을 붙잡고 나를 인도하곤 했다. 참 귀여운 아이다.
어느 날인가 나는 어츠키에게 물어 보았다.

"어츠키, 너는 앞으로 커서 어떤 사람이 될래?"
"목사님, 나는 커서 몽골의 대통령 할 거예요."
"그래, 꼭 몽골 대통령이 되거라. 네가 몽골 대통령할 때 목사님이 몽골가면 어떻게 할래?"
"목사님이 오시면 내가 대통령 차 갖고 공항에 나갈 거예요. 그리고 대통령 궁에서 맛있는 것 대접하고 대통령 궁에서 목사님과 같이 잘 거예요."
"그리고 그 다음엔?"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다 할 거예요."

그렇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키우는 몽골학교 이사장이다. 나는 사람들이 알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꿈을 꾼다. 마틴 루터 킹 목사보다 더 큰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산다.
어츠키가 오바마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면 나는 이미 성공한 사람이다. 내 제자 놈이 몽골의 대통령이 되는 몽골 학교 이사장의 인생은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하다.

또 한 아이가 생각난다. 빌구데라는 아이다. 우리 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몽골에 돌아간 놈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특별히 공부를 잘했는데 한국어 인증시험인 토픽 시험에서 6급을 받은 아이다. 토픽 시험에서 6급이라는 급수는 한국 사람인 나도 받기 어려운 실력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정도의 몽골 아이가 한국어를 어느 정도 잘했는지 가히 상상이 간다. 빌구데가 우리 학교를 졸업할 당시 한 선생님이 한국어로 된 신앙서적을 선물로 주었는데 그 책에 감동을 받고는 몽골말로 번역하겠다고 할 정도로 한국어에 능통한 아이다.
몇 년 전 내가 몽골에 갔을 때에 그 아이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네가 몽골의 미래다'라고 말해 준적이 있다. 빌구데가 몽골의 미래를 책임질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주면서 그 아이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는데 그 때에 빌구데는 내 말에 깊이 동의하는 모습이었다.
문득 고등학교 때의 담임선생님이 기억난다. '해근아, 나는 너를 믿는다.' 담임선생님의 그 말이 오늘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스스로를 지탱하게 한 한마디였다.
어츠키와 더불어 빌구데의 꿈도 몽골의 리더다.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빌구데의 꿈도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큰 꿈을 꾸며 자라는 우리 몽골학교 아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심어주고 싶다.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 지금은 몽골 이주노동자의 아이라며 편견과 차별의 아픔을 당하지만 언젠가 우리 몽골 아이들이 오바마처럼 반드시 리더가 될 것임을 믿기에 우리학교는 희망의 공동체인 것이다.
    
우리 학교에는 어츠키와 빌구데 같은 아이들이 많다. 꿈을 꾸며 살아가는 몽골아이들에게 나는 칭기즈칸의 후예다움을 자랑스럽게 여기라 말한다. 또한 세 가지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신앙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의 기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임을 알아야한다. 아무리 최고가 되어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허무의 시작이다. 나는 지금까지 신앙의 힘을 믿으며 살아왔다. 만약 내게 신앙이 없었다면 벌써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작으나마 믿음이 있었다.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을 때에 나를 다시 살린 것은 믿음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아이들에게 믿음만은 잃어버리지 말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을 사랑할 줄 아는 인생이 복되다.
 
두 번째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몽골학교 아이들은 적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몽골학교에서 가르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세 번째 하나가 더 있는데 그것은 몽골 사람으로서 몽골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몽골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너희들은 한국 사람이 아니라 몽골 사람이야.'라고 수없이 반복해 가르친다. 정체성이 분명해야 성공한다. 오바마는 자신의 어릴 적 꿈이 대통령이라 하였지만 막상 그 자신이 어느 나라 대통령을 해야 할지 무척이나 고민했다고 한다. 그가 세계적인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정체성의 위기를 잘 극복하였기에 가능했다.
몽골사람이라는 사실이 열등감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때 몽골은 세계를 지배했던 민족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몽골사람으로 자부심을 가지라고 가르친다. 칭기즈칸이 얼마나 위대한 지도자였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칭기즈칸의 후예답게 당당하게 살라고 가르쳐야 한다. 몽골사람은 몽골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한국 사람이 아닌 몽골인으로 살아가라는 것은 미래의 지도자가 될 몽골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기 고백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몽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 몽골 아이들은 틀림없이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이다. 나의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다시 떠오른다. '해근아, 나는 너를 믿는다.'라는 말 한마디에 오늘 나는 존재한다. 말 한마디에 나는 나다움을 잃어버리지 않고 내 길을 찾아간다. 우리 아이들도 부디 그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다니엘 1:8-17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동무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로 보시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까닭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하게 되리라 하니라. 환관장이 세워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대로 종들에게 처분하소서 하매 그가 그들의 말을 좇아 열흘을 시험하더니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이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분정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성서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목적과 비전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야곱은 성공에 대한 열망이 있었으며, 요셉은 일찍이 비전과 꿈을 갖고 있었다. 다니엘은 비록 페르시아에 포로의 신분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 역시 인생의 큰 뜻을 갖고 살아 승리한 사람이다. 이들 모두는 이주자요, 나그네였으니 우리 몽골학교 아이들과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이 쓰시는 존재는 집밖으로 나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출해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경계를 넘어 울타리 밖으로 나가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고 맞닥뜨리면서 운명을 개척한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안에 머물며 주어진 기득권이나 누리며 한평생 아무 걱정없이 살겠노라 하는 사람이 어찌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는가 말이다. 성안에 주저앉아 있는 삶은 아무런 역사를 이루지 못한다. 오직 길 위의 인생으로 뛰어 나간 사람만이 세상과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큰 기회가 올 것임을 믿는다. 일찍이 고향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온 몽골 아이들이기에 그 아이들에게는 성공의 유전자가 이미 숙성되고 있는
것이다. 야곱과 요셉처럼,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처럼 말이다.
몽골을 떠나 이주자의 고단한 삶을 살아가며 공부하는 우리 아이들이기에 우리나라 학생들이 경험하지 못한 많은 일들이 있다. 아픔도 유혹도 우리 몽골 아이들에게는 운명처럼 주어져 있다. 그 모든 시련과 유혹을 하나씩 극복해 가면서 자라는 삶은 얼마나 강인할 것인가? 눈물을 삼켜가며 살아야 하는 운명은 지독하게도 강할 수밖에 없다. 나그네로서 살아가는 스트레스와 열등감은 고통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 열등감을 잘만 이겨나갈 수 있다면 역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큰 기회를 줄 것이다.

신영복 선생은 '역사는 열등감 없는 변방성으로부터 시작한다'라고 했다. ‘열등감 없는 변방성’이라는 말을 나는 무척이나 깊이 새기며 살았다. 나 자신도 그런 변방성의 아웃사이더였으니 그 말은 곧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난한 노동자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나는 수많은 열등감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탁월하고 싶었지만 결코 탁월할 수 없는 그 평범함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살았을 그런 열등감이다. 가난한 변방에서 강남의 중심 한 가운데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또 한 번 열등감을 느껴야 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의 아이들은 거의 모두 강남의 부잣집 아들들이었다. 커다란 저택에 살았던 내 친구는 항상 부러운 대상이었다. 거기다 공부도 잘해 모두 스카이 대학으로 들어갈 때에 나는 장신대에 입학했다. 예쁜 여학생들과 미팅을 한다고 자랑하는 내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이미 운명처럼 아웃사이더가 되고 있었다. 한 번도 중심이 되어 보지 못한 나는 주변부를 서성거리며 우울할 수밖에 없었다.
변방성이란 무섭고 두려운 말이다. 아웃사이더로 살아야 하는 운명은 처참하고 때로는 기막힌 열등감에 우울한 날들을 운명처럼 살아야 한다. 중심이 될 수 없는 운명이란 슬픈 현실이었음으로 나는 언제나 학교와 집밖을 오가며 세상과 교회, 우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방황하고 살아야 했다. 그 긴 방황의 터널은 그 열등감과 아웃사이더로서의 고통을 피하려는 어찌할 수 없는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태어나 죽는 날까지 단 한 번도 중심으로 갈 수 없다는 한계 같은 운명이 가져야 할 열등감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목사가 되었다. 왜 나는 목사가 되려 했을까 신앙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 때문인가?
인간에게 열등감은 거부할 수 없는 삶으로 자신을 끌고 갈 수도 있다. 유학 대신 나는 구로공단으로 들어가 이주노동자를 선교하는 목사로 살았다. 더 강한 인생을 꿈꾸었음으로 나는 노동자 그것도 이주 노동자라는 가장 밑바닥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 밑바닥으로 내려가면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그 열등감이 나를 설득했는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내 작은 아이는 장애아로 태어났다. 지적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를 바라보면서 나는 미칠 것 같은 내 안의 분노를 느껴야 했다. 세상에 어찌 이렇게 내 의지와는 빗나간 삶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한계가 찾아왔다. 내 눈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나는 실명했고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 이주민 나그네를 섬기며 장애아들과 함께 시력을 잃은 밑바닥 인생이 쓰레기처럼 주어졌다. 그때 나는 미쳤다. 이미 나는 미칠 수밖에 없었다. 죽고 싶었고 죽음 이외의 어떤 선택도 없었다. 더 이상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했다. 이것이 지금의 나다. 단 1%의 희망도 없으니 나는 불행하고 처참한 사람이 되었다. 나보다 불행하고 비참한 삶이 있을까?
변방성은 내 운명이다. 비주류 아웃사이더로 살아야 하는 삶에다 후천적 시각장애와 죽는 날까지 안고 살아야 하는 내 아들의 삶까지 온통 나는 열등감의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이다.

어느 날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을 읽다가 나는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신 선생은 억울하게 무기징역의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버티고 있었다. 그 긴 무기형의 감옥살이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절망 그 자체였음이 분명했지만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을 연마하면서 삶을 저주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날 나는 울며 하나님께 대들었다.

"하나님, 저 신 선생은 무기징역을 살면서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는 비록 무기형의 삶을 살지만 나름의 명분도 있고 그 자신이 고통의 나날을 이길 수 있는 내공이라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무기징역 아닌 무기징역의 삶을 살아야 합니까? 나는 어떻게 남은 삶을 살아야 합니까? 나섬이라는 말이 나그네를 섬기는 공동체라는 말인데 오늘 나에게 나섬은 '나는 섬 안에 있다'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나는 억울합니다. 하나님! 어찌하라는 것입니까?"

그렇게 한참 눈물을 흘리며 나를 저주하신 하나님께 원망의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때에 주님께서 내게 속삭이셨다.

"그래, 너는 섬 안에 있다. 섬 안에서 죽는 날까지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그 섬을 세계로 만들어 주마."

그래서 나는 울다가 웃었다. 그때부터 신영복 선생의 모든 글들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 찾아낸 말이 변방성이다. 열등감 없는 변방성이라는 말에 마치 총 맞은 사람처럼 꼼짝 안하고 한참이나 멈추어 서있었다. 그리고 깊이 묵상하며 예수님을 생각했다. 예수님이야말로 그 열등감 없는 변방성의 삶이 아니었던가?

요한복음 1:45-51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갈릴리 나사렛은 변방 중 변방이다. 나는 이스라엘을 두 번 가 보았는데 그때마다 예루살렘과 갈릴리 특별히 나사렛을 거닐며 나는 '열등감 없는 변방성이 세상과 역사를 바꾼다.'라는 이 말을 곱씹고 다녔다.
예수님은 평생 예루살렘에 들어갈 기회가 없었을까? 예수님은 죽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들어갔을 뿐 그가 예루살렘에서 사역을 했거나 예루살렘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냈다는 말은 성서에 없다. 예수님의 사역지는 갈릴리 가버나움과 그 변방의 빈들이었다. 몸을 못쓰는 장애인들과 쓰레기처럼 취급당하던 세리와 창녀와 죄인들의 친구로 살았던 예수다.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이방인의 여인을 만나 오해의 삶을 스스럼없이 노출하며 살았던 그 용감한 예수가 좋다.
가장 작은 마을 베들레헴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나신 그 변방의 예수가 지금은 너무 좋다. 태어나자마자 애급으로 난민이 되어 도망했던 예수, 그 예수께서 돌아온 곳이 나사렛이다. 지금도 나사렛은 변방이다. 그런 나사렛에서 예수는 목수의 아들로 살았다. 노동자의 아들이며 가난한 변방의 고민 많았던 청년을 상상하며 나는 나사렛의 그 좁은 골목을 아내의 손을 잡고  더듬거리며 걸어보았다. 그날 나는 예수를 생각하며 나의 운명 같은 불행과 밑바닥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예수가 뛰어놀았을 그 좁은 골목에서 예수의 작은 흔적이라도 찾아보려고 보이지도 않는 눈을 비벼가며 열등감과 변방성을 생각했다.

예루살렘과 갈릴리는 대칭의 공간이며 오늘도 우리가 선택해야할 삶의 존재양식이다. 예루살렘의 목회인가 갈릴리의 목회인가는 결국 자신의 철학과 신학에 근거한 목회적 양식이다. 예수께서 어디에서 목회하셨는가를 물어보면 답은 나올 것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예수의 가셨던 길을 외면하는 불순종의 선택을 할 때가 많다.
구로공단에서 여기 광장동의 몽골학교까지 나는 오직 예수라면 어떤 목회를 하셨을까를 고민하며 살고자 했다. 작은 길과 좁은 문의 목회가 내가 갈 길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는 변방의 예수가 좋다. 예루살렘은 예수가 목회하신 곳이 아니라 울며 슬퍼하시던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공간이다. 예루살렘의 그들은 예수를 죽였다. 예수께서 목회하시며 평생 돌보셨던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이다. 예루살렘은 기득권의 상징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민낯이다. 성전은 장사꾼들의 난장이 되어버렸으며 대제사장의 자리는 가야바와 안나스가 세습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한국교회의 기득권과 권력을 세습하는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그리고 그 욕망과 권력에 도전하신 예수님이 보인다. 그는 그것을 저항하며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저항의 끝에 십자가가 있다. 예수님은 종교권력이 정치권력을 이용한 십자가 처형의 희생자가 되셔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제자들에게는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 하셨다.

마태복음 28:1-10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 할쌔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부활하신 예수의 한마디가 언제나 나를 나섬과 몽골학교에 붙잡아 놓았다. 힘들고 지칠 때면 이곳을 버려두고 훌쩍 떠나고도 싶었다. 그러나 여기가 갈릴리였음으로 나는 떠날 수 없었다. 예루살렘의 목회도 하고 싶었다. 부요함에 희희낙락하는 목사들을 보면서 나도 그들처럼 폼나게 골프도 치고 싶었다. 가는 곳마다 대접을 받고 윗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누리며 살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런 날은 솔직히 평생 한두 번쯤 되었을까? 감사하게도 나는 올라갈 의지도 누릴 것에 대한 동경도 없다.
내가 속한 노회에서 전입순서로는 아마도 내가 가장 고참 일지도 모른다. 나는 1987년2월 서울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군목으로 입대했다. 그때에 서울노회는 나의 목사안수를 위한 임시노회를 광장교회에서 열었다. 그 후 지금까지 서울노회 목사로 살았으니 전입 후 30년이 훨씬 넘은 고참 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나는 노회에서 그 흔한 시찰장 한번 해보지 않았다. 아니 나에게 그런 자리를 권하는 사람도 없었다. 마치 나섬의 목사는 당연한 예외인 것처럼 나는 조금도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하긴 나 같은 밑바닥 목사가 어찌 그 자리들을 가려 하겠는가? 나는 그렇게 배제되고 거부당한 존재로 살았다. 그렇다고 지금의 내 삶과 사역에 대하여 후회한 적은 없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이 자리로 돌아올 것임을 고백하며 살았으니 나는 자리와 관계없이 이미 행복한 목사다.
 
열등감은 나를 괴롭힌 주범이다. 누가 열등감을 나에게 강제한 사람은 없다. 그냥 내가 그렇게 스스로 열등감으로 살았으니 그것은 오직 내 자신의 문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신영복  선생의 그 말 한마디 '열등감 없는 변방성'이라는 말에 나는 드디어 내 존재론적 고민과 함께 나섬과 몽골학교의 목회적 의미를 발견했다. 그리고 내가 만나고 사랑하는 수많은 나그네들과 몽골 학생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이 열린 것이다. 문제는 나를 흔드는 그 열등감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내게는 그런 열등감이 새로운 자존감으로 변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내 사역과 삶에 대하여 무한한 자존감을 갖고 있다. 열등감 없는 변방성에서 역사의 변혁을 찾았던 신선생의 안목이 탁월하다. 그는 예수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변방의 아웃사이더에서 예루살렘이라는 주류의 중심부로 서서히 옮겨갔던 그 변혁의 바람을 보았던 것이다. 역사는 중심부에서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변방의 주변부에서부터 중심으로 이동하며 변화를 추구한다. 나는 한 번도 중심에 서 본적도 가 본적도 없다. 가려고 시도해 본적도 없으니 나는 태생적으로 아웃사이더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비주류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를 느낀다. 나섬과 몽골학교가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고 교회를 혁신하는 중심부의 자리로 옮겨간다. 나섬과 몽골학교가 역사와 세상을 바꾸려 한다. 선교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성안에 갇힌 교회를 향하여 저항하며 길 위로 올라오라고 소리 지를 것이다. 길 위의 삶만이 하나님이 쓰시는 인생이 된다고 주장하는 우리의 존재론적 근거를 삶으로 보여주며 역사의 주체가 되려 한다.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가 보여주었듯이 몽골 학생들이 변방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열등감 없는 변방성의 삶이 곧 나와 나섬, 그리고 우리 몽골 아이들의 삶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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