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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굿모닝몽골19 몽골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

고린도전서 3:7-8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   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하나님 나라의 선교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하신다. 우리는 그 선교를 '하나님의 선교' 즉 미쇼데이(Missio Dei)'라 부른다. 하나님의 선교는 우리가 하는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이 스스로 하신다는 의미다. 나는 몽골 선교를 비롯하여 몽골학교를 세워 가면서 하나님의 선교라는 고백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말로 내게는 지금까지의 사명을 감당할 능력도 은사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같이 사람과 문화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이 극심한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대단히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다. 무엇이든 의심하고 불편한 것에 대하여는 조금도 참을성이 없으며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채워진 이기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님은 가난한 형편에서도 나를 퍽이나 귀하게 키우시려 노력하셨다. 어머니의 우리 두 형제에 대한 교육은 지나칠 정도로 극성이셨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에 광장동에서 지금의 어머니가 사시는 경기도 하남시로 이사를 했다. 당시에는 한강 이북에 좋은 학교가 많아서 어머니는 내게 초등학교를 강북의 광장초등학교를 다니라하셨다. 집은 경기도 하남시에 있었지만 큰 길로 나오면 지금의 강동구에 초등학교가 있었건만 우리 두 형제는 광장동의 광장초등학교를 다녀야 했다. 광장초등학교를 가려면 우리 집이 있는 경기도 하남시 초일동에서 비포장도로로 10분 이상을 걸어 나와 강동구 상일동에서 버스를 타고 천호동 터미널까지 와서는 다시 광진교를 도보로 건너 광장초등학교로 등교해야 한다. 당시에는 광진교 이외에 한강 다리가 그 지역에는 없었던 데다 광진교에서 큰 사고가 나는 바람에 버스가 다니지 않았음으로 그 긴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한결같이 광진교를 걸어 다닌 것이다. 정말 끔찍하게도 먼 거리를 초등학교 어린아이가 다녀야 했다. 집에서 큰 길로 나오면 초등학교가 있었건만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더 좋은 학교를 위하여 나와 내 아우는 그 긴 거리를 통학하여야 했다. 우리 어머니가 그런 분이셨다. 뿐만아니라 중학교도 마찬가지로 건국중학교를 다녀야 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의 고생이었다. 천호동 지역에도 몇 개의 중학교가 있었건만 어머니는 굳이 광진구의 건국중학교를 다니라 했다. 내 아우는 당시 수도사대부속중학교를 다녔는데 참 고생도 많았다. 그렇게 해서 고등학교는 강남의 휘문고등학교를 들어갔으니 또한 그곳은 어디던가? 우리 집 경기도 하남시에서 그 먼 강남의 삼성동 언덕배기까지 올라 학교를 가면 힘이 다 빠져 공부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러나 공부는 또 공부였으니 어머니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음에도 가정교사를 붙이고 과외공부를 시켜 주셨다.
당시 아버지는 하남시에서 양계를 하셨는데 닭고기를 먹는 날이면 언제든지 닭 한 마리의 상징인 닭똥집은 내게만 주셨다. 큰 아들만이 닭똥집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내 아우는 차별도 많이 받은 친구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를 특별히 많이 사랑하셨다. 나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아깝지 않게 생각하시며 키워 주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정말 특별한 사랑과 돌봄으로 자랐다.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부모님이 나에 대하여 특별한 대우를 해 주신 것만큼은 분명하니 그런 사랑이 나의 성격과 삶에 적잖이 영향을 주었음은 확실하다.
그 큰 사랑의 은덕이었을까 마는 나는 먹는 것에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으로 키워졌다. 특별히 먹는 문제는 완전 화석인간으로 자라야 했다. 음식 솜씨가 유독 탁월하신 어머니의 그 음식에 중독되고 길들여졌으니 지금까지도 먹는 음식에 대한 나의 까칠함은 유난스럽다. 나를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나에게서 크게 실망할 것을 알고 있지만 나에게 그 문제만큼은 해결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내 아내도 그 문제에서 만큼은 두 손을 들었을 정도니 말이다.
 
사도행전 10:9-1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율법으로 길들여진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보여주신 음식에 대한 명령은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율법에 의하면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들이 있다. 율법은 유대인에게 절대적 권위를 가진다. 만약 율법을 어기는 날이면 곧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예고한다. 그것은 죽음과 맞바꿀 만큼이나 강력한 명령이다.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

레위기 11:3-10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 약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사반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물에 있는 모든 것 중 너희의 먹을만한 것은 이것이니 무릇 강과 바다와 다른 물에 있는 것 중에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무릇 물에서 동하는 것과 무릇 물에서 사는 것 곧 무릇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

지금의 음식문화로 보면 결코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보인다. 오징어와 뱀장어 같은 해물들에서부터 선지해장국은 물론이고 삼겹살과 뼈다귀 해장국과 개고기 등등 지금의 음식문화 가운데 먹으면 율법을 어기는 것들이다. 유대인인 베드로에게 보여주시며 먹으라고 하신 것들이 오늘날로 보면 대충 이런 것들이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먹을 수 있었겠는가? 유대인으로 유대교의 율법에 경도되어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먹어서는 안 되는 금기의 음식에 손을 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먹기를 거부하는 베드로에게 하나님은 세 번이나 먹으라 하신다.
친구가 되려면 친구가 먹는 것을 먹어야 한다. 진정한 친구는 친구가 먹는 것을 당연히 먹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예수님은 죄인과 세리와 창녀의 친구로 그들이 먹고 마시는 것들을 당연시 하셨다. 그러니 어느 날 세례요한은 감옥에 있던 자신에게 들려오는 예수의 기행에 의심을 품고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에게로 보내어 물었던 것이 아닌가!

누가복음 7:17-23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고하니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저희가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세례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말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마침 그 시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지라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죄인과 약자들의 친구로 살아야 한다면 그들이 먹고 마시는 것을 함께 더불어 먹고 마셔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의 논리다. 예수님은 그렇게 사셨으며 그 삶이 오해를 받고 때로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실족할 이유가 되었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고 그 아들은 세상의 문화와 음식을 함께 먹고 마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그것이 예수님의 선교다.
먹는 음식은 자기를 설명하는 정체성의 상징이다. 내가 무엇을 먹고 사는가에 따라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가 보여 진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선교방법이 있었다. 그의 삶이 곧 선교 자체다. 그는 죄인들과 약자들에 대하여 언제나 열린 태도로 접근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문화와 삶에 전적으로 하나가 되시려 했다. 혹시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그것을 트집 잡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논쟁하시며 그들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논쟁에서부터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시는 모습 속에서, 그리고 로마의 식민 지배를 세금의 문제와 교묘하게 엮어 예수를 음모하려는 세력들에 대응하시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을 선교적으로 대처하시고 해결하셨다. 그것이 우리의 교본이다. 나섬과 몽골학교의 선교적 모범은 오직 성서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이 전부다.
그러나 나는 그 가르침에 절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얼치기 목사다. 먹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도 이방인 나그네들의 본 모습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음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도, 먹는 것에도 때로 불편할 때가 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이런 한계를 갖고서도 나는 목회를 한다. 그것도 나그네 이방인들을 예수를 섬기듯 섬기자고 설파하는 나는 분명 바리새인이다. 위선과 허위로 가득한 나의 이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선교하심으로 나는 선교사가 되고 여기까지 쓰임 받았으니 그것이 은혜이며 축복이 아닌가?

솔직히 나는 몽골 음식을 먹지 못한다. 그들의 친구가 되려면 그들의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나에게 가장 큰 치명적인 문제는 곧 먹는 문제이다.  
몽골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 유목민 고유의 냄새가 난다. 1999년 5월, 처음 몽골로 향하는 대한항공편을 탔는데 왜 우리 국적의 비행기임에도 이런 냄새가 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른 나라에 가는 비행기에서는 나지 않는 몽골만의 특유한 냄새다. 베트남 비행기도 필리핀 비행기도 그 어떤 나라로 가는 비행기에서도 나지 않는 독특한 몽골 냄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초기 몽골행 비행기에서는 양 냄새가 났다. 양고기를 삶아놓은 ‘헐헉’이라는 몽골전통 음식에서 나는 그 양 냄새 말이다.
대한항공 안에서도 양고기 냄새가 났으니 몽골 항공에서는 얼마나 진한 냄새가 났을까마는 실로 양 냄새에 대한 나의 강한 거부반응은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처음 몽골에 갈 때에 나던 그 양 냄새에 대한 강한 인상이 화석같이 굳어졌으므로 그 후 나는 양고기를 먹지 못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변명이다. 몽골에 갈 때마다 양고기를 먹어보기는 해도 몇 점 먹을 둥 말 둥 흉내만 내는 나의 모습이 민망할 뿐이다. 어떻게 몽골 선교를 한다는 사람이 몽골음식을 먹지 못하는가 말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을...
양고기 냄새를 맡으며 몽골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그 후 몽골 사람들이 지나치기만 해도 곧바로 양 냄새가 났다. 하물며 몽골 비행기 안에서 서비스를 해주는 몽골의 스튜어디어스에게서도 양 냄새가 나는 것 같으니 나의 양고기 냄새에 대한 편견은 도가 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요즘은 양 냄새에 조금씩 적응되어가는 것 같으니 나도 변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양고기야 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음식이다. 유대인들의 제사에는 반드시 양을 잡아 드렸으니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맞는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보니 양고기야 말로 가장 맛있는 음식일 게다. 그러나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음식으로만 길들여진 나에게 양고기는 낯선 음식이다. 특히 몽골의 양고기는 냄새가 더 진하다. 양의 그 고유한 냄새는 몽골의 냄새가 되었다. 몽골의 어디를 가도 그 양 냄새가 진동한다. 그만큼 몽골과 양고기는 깊은 관계가 있다. 더욱이 몽골은 우리의 김장처럼 양을 잡고 그 양고기를 육포로 말려 겨울을 준비하느라 온 도시가 양고기 냄새로 가득하다. 몽골 사람들의 천막집에도, 아파트 베란다에도 양고기 말리는 장면들이 연출된다. 물론 다른 고기도 있다. 소고기와 말고기도 있다. 염소와 낙타고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고기가 압도적이다.
얼마 전 고비사막에 갔더니 고비에 사는 몽골인의 고비 양고기 자랑이 대단하다. 고비의 양은 울란바토르나 다른 지역의 양고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하여 먹어 보았으나 암만 그래도 양고기는 양고기다. 양고기의 냄새는 어지간해서 극복이 되질 않는다. 양의 그 냄새는 내게 익숙해지질 않는다. 아무리 먹으려 해도 양고기 냄새만은 이길 수 없다.
선교사는 선교사로서 몇 가지의 조건을 갖는다. 그 선교사의 조건 중 하나가 무엇이든 잘 먹어야 한다. 먹지 않으면 선교사가 될 자격이 없다. 선교는 선교지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가능하다. 그들의 음식, 문화와 일치하여야 한다. 함께 공감하고 공유하여야 선교가 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그 선교사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자격조건을 갖고 있지 않다. 음식 때문이다. 도저히 먹을 수 없다. 죽을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면 먹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먹는 음식만은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셨다. 몽골음식을 먹지 않고도 몽골 선교를 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이다. 나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선교를 한다. 선교지의 음식을 못 먹어도 그 민족과 나라를 선교하는 선교사다. 세상에 이런 선교사는 내가 유일할 거다. 이것은 자랑이 아니다.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선교하는 삶을 살 수 있기에 감사함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만큼 세상은 다양하고 하나님 나라의 선교 방법도 여러 가지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다양성이다.
지금 세상은 다양성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그동안 찾아가서 하는 선교를 하였으나 이제는 찾아온 이들을 통하여 선교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200만 명의 이주민이 들어와 살고 있으며, 그들 중 몽골인은 5만 명에 이른다. 5만 명은 몽골인구의 1.5%를 넘는 수치다. 300만 명의 인구 중 5만 명이니 적지 않은 숫자다. 몽골인구 100명중 1.5명꼴이니 엄청난 숫자다.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벌어가는 경제적 효과도 만만치 않다. 몽골 경제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몽골인들이다. 그들의 힘은 몽골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다. 그러므로 몽골을 바꾸는 힘이 이곳에 있다. 경제와 정치와 문화와 선교까지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 와있는 것이다.
그들의 자녀들이 우리 학교에 있으며 나는 그 학교의 이사장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몽골문화원을 세웠고 문화원의 원장이기도 하다. 몽골문화원에서 몽골인들을 위한 축제를 열면 한 번에 수천 명이 모여든다.
나는 눈이 보이지 않으며, 몽골말을 할 수 없고, 몽골음식을 먹지 못하며 자유롭게 몽골에 갈  수도 없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몽골인들은 언제나 내 곁에 있다. 그들이 나를 찾아오고 오히려 그들이 나를 만나려 한다. 내가 만나주는 입장이니 역전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많은 몽골인 친구들이 있다. 몽골의 지도자들부터 아주 작은 몽골 아이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다. 내가 만나고 싶으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도록 접속되어 있다. 접속이란 네트워크이다. 몽골이 나와 가까이 있다는 자신감이다. 내 친구들이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들을 사랑한다. 우리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이니 이해관계로 얽힌 사이도 아니다. 사랑하는 관계이니 큰 부담도 없다. 이것이 진정한 힘이다. 사랑으로 만들어진 관계가 가장 큰 힘이다. 경제적 관계가 아닌 사랑의 관계가 나중에 큰 역할을 한다. 사랑에 빚진 자들이 내 친구들이며 제자들이다. 지금 나섬과 몽골학교의 사역이란 그런 거다.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바로 그런 거다. 몽골아이들이 우리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가장 힘든 시간에 가장 의미 있는 교육을 받는다. 우리 학교는 그 아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그 아이들의 인생을 바꾸는 학교와 교육이어야 한다. 그러기위하여 나는 죽을 만큼 힘들지만 때로 그 미래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우리 몽골 아이들이 내 인생과 내 비전과 우리 민족의 미래를 견인하게 될 것임을 믿으며 말이다.
나는 몽골음식을 먹지 못하지만 몽골선교를 한다. 나는 장애인이 되었어도 몽골선교를 한다. 나는 능력이 없어도 몽골을 선교하고 몽골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간다. 몽골을 통하여 우리민족의 통일을 생각하고 미래를 꿈꾸는 인생을 살아간다.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란 바로 그런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고백을 하여야 한다. 언어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이 내게 묻는 물음 중 언어 즉 몽골말을 잘하느냐는 것이다. 몽골선교를 하니 몽골말을 얼마나 잘 할까 싶어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몽골어를 할 줄 모른다. 그것도 전혀 못한다. 내가 눈이 보이지 않기 전에 몽골어를 잠시 배우려고 노력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몽골어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은데다 눈의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더 이상 몽골어를 배울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몽골선교를 한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정말 하나님의 선교를 고백할 수밖에 없다.
몽골이라는 나라는 전통적으로 유목부족이다. 몽골족이 몽골초원의 주인이 되기 전부터 수많은 유목부족이 그곳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었다. 케레이트와 나이만, 메르키트와 타타르, 거란과 같은 수많은 유목부족이 그들이다. 그러다 1206년 칭기즈칸이 몽골을 중심으로 유목부족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드디어 몽골족이 초원의 주인이 된 것이다. 유목부족은 본디 문자라는 개념이 없었다. 즉 말로만의 언어는 존재했지만 글로 쓰는 문자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칭기즈칸이 제국을 이루고 나니 말로만의 언어가 아닌 글로 남기는 문자로서의 언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에 그들에게 문자를 제공한 사람들이 실크로드의 주인이었던 소그드인들이다. 위구르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소그드인들이 몽골제국에 문자를 제공하면서 드디어 몽골에도 문자의 개념이 출현한 것이다. 
그런데 1921년 몽골이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루고 지금의 몽골이라는 국가가 탄생하면서 새롭게 언어가 필요했다. 그때에 그들이 차용한 언어가 소련이 사용하던 키릴어다. 키릴어는 마치 영어를 거꾸로 표기한 것처럼 매우 난해하여 영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배우기 까다로운 언어다. 특별히 몽골은 초원에서 멀리까지 소리가 가도록 발음을 해야 하기에 그 발음이 거칠고 힘들다. 배우는 것도 어렵지만 특별히 내게는 시력이 떨어지면서 언어에 대한 감각도 함께 상실되는 상황이 되었으니 몽골어를 배우는 것은 상황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몽골선교를 하고 몽골 사람들을 섬긴다. 왜 그것이 가능한가? 어떻게 그런 선교적 삶이 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몽골사람들이 우리말을 배우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한국어를 빠르게 배우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굳이 내가 먼저 몽골어를 배워야할 이유가 없다.
나는 그들에게 한국어로 말하고 그들은 내말을 이해한다. 언어를 알아야 선교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틀린 말이다. 다른 선교사들에게는 필요한 부분일지 모르나 내게는 다르다. 나는 몽골어를 한마디도 못하면서도 선교를 한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그런 세상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이주민 선교의 장점이라면 언어의 문제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우리 나섬에는 몽골, 인도, 이란,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여섯 개 국가의 예배모임이 있다. 보통 매 주일에는 각자 자기들의 예배로 모이지만 일 년에 두 서너 번은 함께 예배를 드린다. 한국인 나섬교회의 성도들까지 모이니 총 일곱 개 국가의 성도들이 모이는 것이다. 그날은 내가 설교를 하게 되는데 어떤 나라의 언어로 할 것인가?
영어도 필리핀 사람들의 타갈로그어도 인도의 힌두어도 아니다. 오직 한국말로만 통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한국말로 설교를 하고 선교를 한다. 그것이 이주민 선교다.  

나에게 몽골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조금 한다고 한다. 사실은 조금은 한다. 인사와 감사 그리고 몇 마디의 단어를 조합하면 그런대로 말을 한다고 할까? 웃기지만 그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선교는 가능하다. 말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 내가 몽골어를 못하면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더라. 그것이 선교다. 왜 사람들은 언어에 종속되는가? 할 수 있다면 좋지만 못한다고 선교가 불가능할까?
선교는 하나님이 하신다. 내 능력과 언어실력으로 선교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편견이다. 그것도 선입관이며 고정관념일 뿐이다. 선교가 세상의 비즈니스와 다른 것이 이 부분이다. 언어가 아니라 삶이 선교다.
선교는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이 직접 선교하심을 믿고 우리는 겸손하게 순종하고 살아갈 뿐이다.
이렇듯 나는 몽골 음식도 먹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몽골선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삶을 산다. 그럼에도 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몽골 선교의 현장을 만들고 영향력 있는 삶을 살아간다. 그것이 모두 은혜가 아닌가? 내가 가진 은사와 능력에 관계없이 하나님은 나를 몽골선교의 현장에서 사용하고 계시다. 누가 선교사가 될 수 있는가? 사람들은 나이로 제한하고 영어실력으로 선교사의 능력을 나누지만 하나님의 선교는 세상의 기준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교 방식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교 방법대로 선교하심으로 우리의 인간적인 잣대로 그분의 선교를 판단하거나 결정할 수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안에서만 이루어짐을 고백하면 우리의 선교사역에 불가능이 없다. 지금도 나는 나섬과 몽골학교의 모든 사역이 하나님의 선교라는 관점에서 지속할 수 있음을 믿는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는 중 또 하나의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나섬 아시아 청소년학교’의 시작을 알리는 좋은 소식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아시아청소년학교 설립을 소망하고 기도해 왔다. 몽골학교를 운영하면서 몽골아이들 이외에 아시아의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해서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유보하고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교육청에 다문화 위탁형대안학교 설립을 신청하고 기다리던 중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몽골학교 이외에 아시아청소년학교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를 놓고 고민하였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또한 가능한 사역이라 믿는다.

빌립보서 4:10-12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나섬과 몽골학교 그리고 이제는 나섬 아시아 청소년학교까지 우리의 사역은 더 확장되고 있다. 그 모든 사역은 우리의 힘으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도우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그 힘이 아니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음으로 또 하나의 아시아청소년학교 사역도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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