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몽골 21 몽골학교 정원 300명의 의미와 선교적 상상력 > 노마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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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굿모닝 몽골 21 몽골학교 정원 300명의 의미와 선교적 상상력

 

시편 118:21-23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2014년 9월 현재의 몽골학교를 새롭게 건축하고 개교를 한 후 학생수가 300명을 넘어섰다. 1999년 8명의 몽골 학생들로 시작한 몽골학교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순간순간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정말 기적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난 세월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 하면 그렇게 치열하게 살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나는 다시 돌아가 더 좋은 학교를 만드는 일에 헌신하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으니 나에게 몽골학교는 운명같은 존재다.
처음 몽골학교는 8명의 학생들로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더 이상 강변의 그 좁은 지하실 한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교실도 부족하고 가르칠 교사도 없었다. 아이들은 몰려오는데 아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도 교사도 없었다. 나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이들이 몰려오는 숫자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갔다. 점점 늘어나는 몽골학생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새로운 비전을 갖기 시작했다. 8명의 몽골 아이들이 순식간에 20명이 넘을 만큼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이제 몽골학교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학교를 하려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그저 갈 곳 없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몽골 아이들에게 최소한이라도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끔찍하게 배려하고 도우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명령이었으니 나는 무조건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기로 했다. 다른 어떤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저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주고 공부를 시키는 것이 내 삶이고 사명이라 생각한 것이 전부였다.
갑작스럽게 20명이 넘는 몽골 아이들이 그 좁은 강변의 지하실 학교로 몰려오니 난감했다. 무료 점심식사 제공도 만만치 않게 되었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먹어야 하는데 그곳을 공부하는 공간으로 사용해야했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울 뿐이었다. 학교로도 밥 먹는 식당으로도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니 마음만 답답하고 가슴이 아팠다. 어떻게 하면 더 넓은 공간을 만들 수 있는가를 생각하며 기도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알고 지내던 집사님이 자신의 고시원 지하실에 작지만 그런대로 빈 공간이 있으니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찾아가 보았다. 지하실인지라 어둡고 사용하지 않아 여기저기 손볼 곳이 많았지만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은혜인가?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이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 보였다. 이런 곳이라면 아주 오랫동안 학교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 정도만 있어도 이제 더 이상 걱정이 없을 것 만 같았다. 곧바로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작은 지하실에 칸막이를 하여 교실을 만들었다. 교사들이 모여 회의라도 할 수 있도록 교무실도 꾸몄다. 그런대로 학교 꼴을 갖추었다. 학교를 옮기니 아이들이 더 몰려오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 지하실로 옮기고 나서 금방 40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20명이 다시 40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더 이상 교실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새 교실로 옮기자마자 다시 교실 걱정이 생겨난 것이다. 더 이상 아이들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매일같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그때에 당시 광진구청장이셨던 정영섭 구청장님께서 전화를 하시어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였다. 그리고 식사 자리에서 몽골학교 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앞장에서도 언급했듯이 정 구청장님의 배려로 지금 몽골학교 바로 직전의 건물을 작게나마 건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03년 12월 우리는 광장중학교 후문 골목 끝자락에 몽골학교 겸 나섬 선교센터를 지을 수 있었다. 1999년 12월에 시작한 몽골학교가 4년 만에 작은 건물을 짓고 새로운 학교로 개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에 건축을 하면서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던지 치료가 되었던 내 눈의 병은 다시 재발하여 결국 완전히 실명을 하고 말았다.
골목 끝 몽골학교는 아이들의 천국처럼 행복한 학교였다. 비록 운동장이 없어 골목에서 뛰놀아야 했지만 아이들은 무척 행복해했다. 40여명의 아이들이 새로운 학교에 모였다. 그때는 정식학교가 아니었음으로 아이들은 제각각이었다. 학년의 구분도 제대로 없었고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거의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아내가 학교의 책임자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중학교 교사로 재직한 경험이 있었음으로 학교운영에 대하여 조금은 이해가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열악했음으로 참으로 힘든 시간들이었다. 학교를 정식 외국인 학교로 인가를 받아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2005년 정식 학교로 인가를 받게 되었다.  그러자 몽골학교의 위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더 많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 이전부터 아이들은 오고 있었지만 정식 외국인학교로 인가를 받은 것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학생 수는 금방 60명으로 늘어났다. 물론 교실이 부족했다. 선교센터 앞 정원으로 꾸며진 공간을 허물고 가건물을 지었다. 건물 옥상을 개조해 교실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였다. 결국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공간에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아야 했다. 처음에는 하나, 그러다 둘 그리고 마지막 세 개까지 그 좁다란 골목에는 컨테이너 교실로 꽉 차게 되었다. 컨테이너 교실에서 아이들이 공부하게 되었지만 아이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불평보다는 감사하고 행복해하였고 나도 행복했고 감사했다. 그러나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았다. 어떻게 컨테이너로 교실을 만들고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가? 겨울은 너무 추웠고 여름은 너무 더웠다. 그러나 아이들은 더욱 많이 몰려들었고 더 이상은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더 이상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을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아이들이 80명이 넘은 것이다. 말이 80명이지 골목이 왁자지껄 몽골학생들로 가득 채워진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에게 교복도 입혔다. 우리는 이랜드 주니어에서 똑같은 셔츠와 넥타이를 주문해 교복처럼 맞추어 입혔다.
우리학교는 그렇게 조금씩 학교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으므로 고생은 되었지만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곳에서 많이도 울고 웃었다. 기쁨과 감격 그리고 안타까움과 슬픔이 교차한 그 골목 끝 몽골학교의 시간은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시간들이다.
2008년 현재의 몽골학교 부지를 서울시가 제공한 후, 행정소송으로 5년여의 힘든 시간을 보내고, 2014년 건축이 완공되기까지 겪었던 모든 어려움을 뒤로하고, 새 건물로 이전하여 개교한 이후 우리 학교는 눈부시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300명 규모의 학교로 성장한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도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아이들이 수십 명에 달한다. 300명 규모의 학교가 되었음에도 더 이상 아이들을 받을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학교를 지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양이 아니라 질적으로 정말 좋은 학교가 되어야 한다.
내가 이렇게 우리 학교의 역사와 변천을 열거한 이유는 그 의미가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는 몽골학교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지금 우리 학교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는다. 왜냐하면 순간순간 어려운 문제가 주어질 때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꼈으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진정으로 사랑하신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일하시며 미래의 구원사를 완성시켜 나가신다. 구원의 길은 구별된 자들을 통하여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성서는 늘 그런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몽골학교의 학생수가 8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나는 과정 속에서 나는 내 육신의 눈이 실명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교실도 없었고 가르칠 선생님이 전무한 상황에서 우리 학교는 여기까지 왔다. 아무도 우리 학교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았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그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조금 낳은 조건에서 학교가 있을 뿐이지 여전히 세상의 관심은 우리에게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기에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지금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세상이 어떻게 갈지도 보여준다. 몽골학교 아이들이 300명이 넘어 오히려 몽골에서 내게 로비가 들어오고 자기 자녀들을 받아달라고 부탁을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을 보면서 나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에겐 상상력이 필요하다.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몽골학교 학생수가 300명이 넘어선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숫자를 넘어 그 숫자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라고 하신다. 우리는 현재의 몽골학교를 보면서 미래의 비전을 발견해야 한다.

사도행전 16:6-10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행16:7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 선교에 있어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던 일은 드로아에서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고 바다를 건너 네압볼리 빌립보로 건너간 사건이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 아시아에 머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바울이 가고자했던 곳은 바로 에베소 즉 아시아였다. 작은 아시아 즉 소아시아가 바울의 목적지였다. 그러나 성령은 바울이 에베소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결국 바울은 드로아에서 마게도니아 사람이 나타나 자신을 도와달라는 환상을 보고는 바다를 건너기로 한다. 그것이 바울 선교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바울도 자신의 선교사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는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통하여 새로운 비전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순종함으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선교의 지평을 확장한다. 만약 그때에 바울이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무시하고 에베소로 가고자하여 고집스럽게 자신의 생각에만 머물렀다면 복음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올 수 없었다. 바울의 선교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유럽에서 다시 전세계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결정적 사건은 바로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적 비전을 얻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6장의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과 빌립보 교회의 개척은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세계종교로 탈바꿈하는 대사건이다. 바울의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 가운데 선교적 상상력이 숨겨져 있었었음으로 기독교가 아시아에서 전세계로 선교적 방향을 바꾸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 사건은 바울로 하여금 유대인에서 세계인으로 존재의 탈바꿈을 하라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고민했지만 그는 곧 순종했다.
열린 세상으로 나아가라는 의식의 대전환을 요청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곧 선교적 상상력의 확장이다. 새로운 사회로의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에서 바울처럼 우리도 변화되어야 한다.
나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이 세계선교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바로 드로아에서 보았던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고 바다를 건넌 일이다. 인생에는 중요한 고비가 있고 종종 패러다임의 전환을 하여야 할 때가 있다.

창세기 1: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아브라함이 75세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시어 고향 친척 부모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땅으로 떠나라 명령하신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 순종하였으며 그것이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며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는 대 전환점이 되었다. 그 후 그의 후손들은 한결같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결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대표적으로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데 이스라엘로 개명한 배경에는 그의 삶을 장막에서 광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야곱은 성공과 축복을 사모하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형과 아버지를 속이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광야의 노숙자로 전락한다. 그것이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출발점이다. 장막이라는 성안의 삶에서 광야라는 길 위의 인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면서 야곱의 삶은 달라진다. 그는 축복과 성공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조상이 되었던 이 극적인 대전환은 장막에서 광야로 존재의 탈바꿈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출애굽기는 인생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책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홍해를 건너 광야로 그리고 그곳에서 40년 간 나그네 떠돌이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하기까지 인생의 패턴이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애급의 종살이에서 광야의 백성으로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들어가는 이야기는 마치 한 인생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 받아 존귀하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되기까지의 항로를 보여준다. 그 전환점이 되는 곳에는 언제나 홍해와 요단강이라는 장벽이 있었으며 그 장애물을 극복하여야 새로운 존재로 변신할 수 있었다.
고난은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이루기 위한 전제다. 반드시 고난의 강을 넘어야 새로운 땅이 주어진다.
사도행전 10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먹을 수 없는 것을 먹으라고 세 번이나 요청하시는데 이는 선교의 패러다임을 바꾸라 하시는 메시지다. 즉 유대인만을 위한 구원의 사건을 이방인에게까지 확장하신다는 하나님의 구원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유대인에서 이방인으로, 아시아에서 세계로,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장막에서 광야로, 본토 아비 집에서 길 위의 삶으로 바뀌어야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성서적 개념이며 모든 인생을 향한 명령이다.

나섬과 몽골학교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는 성서적 가르침에 순종하려 했다. 멈추지 않고 도전했으며 또한 그 때마다 기적이 일어났다.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의 흐름이 멈추듯 우리에게도 그런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나는 마치 알에서 새가 깨어나듯이 하루하루를 그렇게 치열하고 힘들게 살아왔다. 길을 만드는 삶을 살기로 했으니 그것은 운명이다. 그러나 아무 개념도 없이 막 살아온 것은 아니다. 나름의 방향이 있었고 상상력을 갖고 도전했다. 선교적 상상력은 길 위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조건이다.
 
몽골학교 학생수가 300명이 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이제부터 몽골학교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비전이 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몽골학교는 한국과 몽골의 다리다. 때로는 지렛대가 되고 선교의 못자리 역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굉장히 많다. 생각하고 상상하면 할수록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고 놀라운 계획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먼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길이 되어야 한다. 몽골학교는 몽골이라는 나라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소망인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 일을 위하여 나섬은 이미 울란바토르에 선교사를 파송했고 그 선교적 사명은 평화선교의 성취다.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통일된 한반도와 몽골이 하나의 공동체로 연합하는 것이다. 그것이 동북아에서 일본과 중국이 차지하려는 패권주의로부터 벗어나 더 강력한 국가로 발돋음 할 수 있는 대안이다. 우리와 몽골은 사실 한 민족이다. 그들과 우리는 뿌리가 같다. 몽골 초원의 메르키트족이 한반도로 내려와 우리 민족이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실상 우리와 몽골은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다.
한반도의 8배의 넓은 초원과 칠천 오백만의 국민이 하나의 공동체로 연합한다면 그 시너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13세기 몽골의 칭기즈칸이 세계제국을 이룩한 것처럼 새로운 제국이 탄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이다. 몽골이 세계선교의 새로운 중심이 되고 중앙아시아를 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할 마지막 길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예일대 교수인 에이미 추아는 그녀의 책 '제국의 미래'에서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세계 제국의 공통점을 설명한다. 1세기의 로마제국과 13세기의 몽골제국, 21세기의 미국을 보라. 로마는 로마 시민권이라는 힘으로 모든 식민지 국민을 하나로 묶어냈다. 몽골의 칭기즈칸은 몽골이라는 작은 부족의 우산 속으로 모든 민족을 하나로 연합한다. 그들은 전쟁터에 5만 명이 출병하면 돌아올 때에는 10만 명의 국민이 되어 돌아왔다고 한다. 몽골의 국민이 되려는 사람에게는 관용과 아량으로 문을 열어 주었다. 고작 10만 명 정도의 몽골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바로 관용이다. 누구에게나 몽골의 국민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적을 만들지 말고 친구를 만들라고 칭기즈칸은 자신의 후손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21세기 미국이 세계의 제국이 된 배경에는 모든 민족을 미국이라는 샐러드 볼 안에 담아낸 다문화 다민족 국가였기 때문이다. 강자가 되려면 모든 인간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강자가 되려는가? 아니면 반도의 섬으로 남을 것인가? 이는 우리의 선택이다. 좁은 한반도 안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하며 시간을 소모할 것인가, 아니면 몽골 초원의 끝없는 지평선을 달리는 오래된 제국의 영광을 재현할 것인가를 지금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나섬공동체와 몽골학교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한 출발점에 서있다. 다문화 다민족의 미래로 나아가 강자의 조건을 충족할 것인가 아니면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민족주의로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을 것인가? 이는 우리 사회와 교회의 숙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어떤 선택이든 나는 새로운 선교적 상상력을 갖고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멈출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더 큰 하늘의 부르심이 있기 때문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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