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잣트와 함께하는 이슬람선교학교1 터키 이스탄불로 가는 길 > 노마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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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호잣트와 함께하는 이슬람선교학교1 터키 이스탄불로 가는 길

터키 이스탄불로 가는 길

 

김진명의 '미중전쟁'이라는 책 두 권을 다 읽고도 비행기는 여전히 하늘 위에 떠 있다. 얼마나 오래가는지 정말 힘들고 지루한 비행이다. 다른 사람들은 영화도 보고 이것저것 할 것도 많은 모양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어폰을 꽂고 책읽기가 전부다. 이스탄불을 서너 번 가보았지만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다. 비행시간이 길지 않다면 얼마든지 다니련만 너무 멀고 힘들다.

그럼에도 나는 터키를 갈 때마다 감사하고 기대가 된다. 호잣트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 영적 아들 같은 호잣트를 만난다는 것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여행은 호잣트와 함께 이슬람 선교학교를 하기 위함이다. 작년까지 그리스 아테네에서 하던 난민 선교학교를 터키에서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에서 무슬림 난민들을 위한 선교학교를 하는 동안 호잣트는 터키와 그리스를 오고가야 했다. 사역지를 터키에 두고 그리스에서 사역을 한다는 것은 호잣트에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는 선교학교를 터키에서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 마침 기쁜소식교회와 연결이 되었다.

호잣트 선교사는 이란계 한국인으로 누가 뭐래도 어엿한 한국인이다. 또한 장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으니 당당한 목사이며 선교사다. 그가 이란계 한국인 선교사로 터키의 이스탄불에 역파송된 지 어느덧 4년이 되어간다. 나는 그를 선교사로 역파송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가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하고 확신하게 되었다.

특별히 이슬람 선교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사역이던가? 선교사들의 한결같은 고백은 이슬람 선교야말로 가장 어려운 사역이라는 것이다. 오래전 이슬람 지역의 선교사로 있던 한 분으로부터 솔직한 고백을 들을 적이 있다. 그는 십 수 년 동안 단 한명도 제대로 제자를 삼지 못했다는 자괴감 섞인 고백을 했었다. 또 다른 선교사는 그냥 그곳에서 밥 먹고 사는 것이 선교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하였다. 이슬람 국가에서 선교사로 사는 거의 모든 선교사들은 그런 고백을 한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 이슬람선교다.

이제는 오히려 이슬람 쪽에서 기독교 국가로 공격적 선교를 하려는 경향이 있으니 기독교와 이슬람은 문명의 충돌을 넘어 영적 선교전쟁을 하고 있는 양상이다.

우리나라만하여도 현재 20만명이 넘는 무슬림이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민자들이며 한국교회에 대하여 실망한 이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 이슬람이 어떤 종교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그동안 이슬람이 포교를 하지 않았던 국가였지만 최근에는 이주민들을 통하여 많은 이슬람이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써 이슬람 청정지역이던 우리나라가 이슬람 포교를 알리는 위험지역으로 전환되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무슬림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소리도 들려오는데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일뿐더러 사실상 불가능한 논리다.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어떻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국가에서 종교적 편견과 차별을 가져올 그런 주장은 어불성설이며 현실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

 

민수기 13:30-33

30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13:31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13:32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13:33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가데스바네아의 정탐꾼들이 똑같은 현실과 상황을 보고 서로 다르게 보고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같은 것을 보고도 서로 다르게 말하는 것은 인식과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무슬림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실상 이슬람에 대한 한국교회의 선교적 대응과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호잣트를 언급할 필요를 느낀다. 바로 호잣트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대표적인 무슬림 출신 이주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나섬은 호잣트를 이슬람 선교의 새로운 모델이며 패러다임이라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호잣트를 통하여 그동안 불가능해 보이던 이슬람 선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나는 호잣트 한 사람을 통해 무슬림 선교의 새로운 길을 찾았다. 한 사람이 엄청난 이슬람 선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역파송의 힘이다.

 

호잣트와 함께 하는 이슬람 선교학교를 위하여 우리 일행은 223일 늦은 저녁 터키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하여 한 시간여를 달린 끝에 호텔에 도착하였다. 호텔에는 이미 테헤란에서 온 4명의 성도들을 포함하여 19명의 이란인들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된 사람 모두가 참여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좋다. 그날 밤 나는 설레이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호잣트를 이곳으로 보낼 때에는 사실 여기까지 상상하지 못하였다. 돌아보니 모두 하나님의 섭리와 큰 계획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제 우리는 이슬람 선교학교를 통하여 이슬람 선교의 새 역사를 쓰려고 한다. 이번 사역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은 또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할까?

호텔까지 달려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누룩으로 비유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다. 작은 누룩 한 덩어리가 세상을 바꾸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간다. 바울처럼 호잣트 한 사람이 이란을 비롯한 무슬림 선교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나도 그 역사 속 한 페이지에 기록될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일 게다.

 

 

이란에서 온 나그네들 그리고 하나님 나라

 

 

창세기 12:1-4

12: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12: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12: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12:4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이란에서부터 나그네들이 모였다. 그들은 부모 고향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이 가라하시는 새로운 땅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이스탄불은 물론 종글닥, 에스키쉐히르 그리고 이란의 테헤란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결코 만나질 수 없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누가 우리를 여기서 만나게 하였는가? 무슨 이유로 우리는 한 공동체의 지체들로 만나게 되었는가? 우리의 만남에는 어떤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을까?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만날 수 없었다.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만나 사랑과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늘의 뜻이다. 호잣트 목사는 우리의 만남을 이어준 다리다. 그는 모든 사역의 중심이며 그를 통하여 우리는 이란과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성서는 나그네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보여 주신다. 노마드 나그네가 세상을 소통하게 하며 그들이 바로 복음의 통로임을 보여 주신다. 나그네는 곧 길 위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이다. 성서는 한결같이 그 사실을 증거 한다.

 

창세기 45:5-8

45:5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45:6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45:7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45:8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요셉이야말로 나그네의 고단한 인생을 잘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요셉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구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먼저 애급에 보내신 것은 구원의 역사를 위한 것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된다. 요셉의 고난은 결국 그의 민족과 열방을 구원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다. 구원을 위한 고난은 은혜이며 그럼으로 우리는 오늘의 절망적 고난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야 한다.

 

이란은 왜 저토록 고난의 민족으로 전락하였는가?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제국을 이루었던 나라가 이란이다. 페르시아는 얼마나 강성했던 제국인가? 몽골의 칭기즈칸에 버금가는 강대국이 이란이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페르시아 제국 시절에 그들은 이스라엘을 지배했다. 그런데 극적으로 고레스왕이 이스라엘의 귀환을 명령함으로 그는 메시아의 현현인 것처럼 전해지기도 한다. 성서 속의 에스더와 다니엘은 페르시아의 포로들이었으며 그들은 한 시대의 메시아니즘을 설명하는 사람들이었다.

 

1980년 호메이니의 이란 이슬람 혁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이란은 세계에서 무시하지 못할 강력한 나라였다.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했으며 그들은 미국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국가였다. 한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동에서 돈을 벌어오기도 했었는데 그 중심국가가 이란이었다. 이란은 결코 쉬운 나라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경제적 파산과 함께 국가적 위기를 맞이했는가? 그리고 오늘날 이들은 왜 고향을 떠나 나그네로 살아가는가? 고난과 절망의 삶은 오늘 그들에게 무슨 섭리로 드러날 것인가? 나는 그들이 처한 현실 속에서 오히려 요셉의 비전과 구원의 날을 상상한다. 새로운 선교적 상상력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스탄불을 비롯하여 원근각처에서 찾아온 이란인 나그네들의 모습 속에 요셉이 보인다. 요셉을 통한 구원의 날을 상상하는 것은 우연인가? 그들은 분명히 요셉이었다. 내가 본 환상이다. 요셉임이 분명하다면 이들을 섬기며 사랑해야한다. 그들에게서 구원의 날을 상상하고 이란을 비롯한 이슬람의 선교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상상하여야 한다. 그것이 오늘 내가 여기에 온 이유다.

 

호잣트 한 사람이 요셉처럼 보인 날들이 있었다. 호잣트가 요셉이었던 것처럼 오늘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그들 모두가 요셉이다. 그럼으로 그들에겐 희망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쓰시는 날들이 오고 있다. 그날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 포기하지도 말아야 한다. 용서하고 기다리며 믿음의 인내를 갖는다면 그들에게 그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요셉이 형들과 조우하고 아버지를 만나는 기막힌 날들을 맞이했던 것처럼 그들의 삶에도 그날은 올 것이다. 그날이 구원의 날이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질 구원의 날이다. 이란이 구원받고 그들의 형제와 자매가 구원받는 그날은 틀림없이 올 것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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