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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223 세례요한과 목사의 퇴장

 

역사가 전설을 넘어 신화가 되려면 시간이 흐르고 그 시간에 수많은 덧칠이 필요하다. 사실보다 더 많은 분칠을 해야만 역사가 신화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만큼 신화가 되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실을 왜곡하거나 분칠을 하는 조작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인간을 신화의 인물로 만드는 일에 대단히 너그럽다. 우리나라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산업화로 우리나라를 여기까지 일으켜 세웠다는 박정희 대통령까지 때로는 반신반인이라는 지나친 논리로 신화의 대열에 합류시키고 있다. 정치인들에 대한 신화화는 그렇다 치더라도 교회의 목사마저 신화의 인물로 만들려는 수작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발상일까?

모세는 느보산에서 자신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것은 모세 스스로 우상의 대상이 되지 않겠다는 고백이었다. 철저히 하나님이 우선이었으며 모압을 넘어 가나안으로 들어가라는 그분의 뜻을 따른 고결한 선택이었다. 아마도 그의 죽음과 시신이 무덤을 만들고 그 무덤가에 히브리 백성이 머물며 그를 신화화할 수도 있다는 의구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히브리 백성이 한 인간에 대한 추모와 그를 향한 우상화의 늪에 빠져 가나안이라는 목적지를 잃어버릴 수도 있음을 경계하려는 모세의 세심한 배려였으리라.

세례요한은 예수님 당시에 가장 영향력 있는 전설과 같은 존재다. 그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라는 별명을 들으며 당시의 헤롯과 지배자들에게 쓴 소리와 비판을 가감 없이 내던진 선지자였다. 그는 예수님이 찾아가 세례를 받으셨던 인물이다. 그것은 그가 예수님보다 여러 면에서 앞섰고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그의 마지막 뒷모습은 어떠했는가?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진정한 성공이며 위대한 존재가 된다. 떠날 때에 떠날 줄 아는 삶이 진정 승자의 삶인 것이다.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한경직 목사님의 위대함은 그가 떠날 때에 드러난다. 템플턴상을 수상했을 때에 그는 스스로 신사참배의 허물을 고백함으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다. 군사독재 시절 그는 독재자들을 위하여 기도회를 주최하는 실수를 여러 번 거듭했었다. 한 인간이 일제시대와 독재 시절을 살아가면서 결코 완벽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많은 실수를 거듭할 수 있다. 인간은 그만큼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한 목사님을 한국교회의 위대한 인물로 평가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떠남의 영성 때문이다. 떠날 때에 아름답게 퇴장할 수 있는 용기가 위대해서다. 평생 얼마나 큰 교회를 세웠고 목회를 어떻게 했느냐가 아니라 떠날 때에 떠날 줄 아는 용기가 그를 전설로 만든 것이다.

모세가 위대한 것은 스스로 우상과 신화의 대상이기를 거절했기 때문이며, 세례요한이 모든 인간 중 가장 존귀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떠나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바울도 자신의 사역과 목회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오직 푯대를 향하여 고난과 죽음의 길을 선택하며 마지막까지 유목적 삶을 살았으므로 기독교 역사상 일등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떠나야 산다. 떠날 때에 깨끗하게 떠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에게서 과연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있는가?

특히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는 이들의 말로는 어떠한가? 얼마나 냄새나고 구질구질한 모습인지 우리 모두가 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성공한 이들의 모습이 허탈하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신화가 되고 싶어 등신대를 세우고 교인들이 그 등신대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소리를 듣고는 아연실색하였다. 참으로 모세가 그립고 세례요한이 그립다.

이 글을 쓰는 나도 황제가 되고 싶고 우상이 되고 싶으며 나아가 신화가 되고 싶다. 그런 목회자가 되려고 우리는 부흥과 성장이라는 허상을 쫒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른 목사들보다 더 많은 교인을 거느리고 더 큰 교회당을 짓고 더 많은 부를 소유한 목회자가 되고 싶어 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우리 안에는 그런 욕망이 숨겨져 있다. 할 수 있다면 왜 그 정도 하고 싶지 않을까 말이다. 솔직하게 그것이 사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떠날 때는 말없이 모두 그분에게 돌려주고 떠나야 한다. 주인은 내가 아니라 예수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교회의 머리이며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을 우리 모두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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