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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236 부활과 정의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가 믿는 것은 부활한 예수님이고 그의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이다. 초대교인들은 부활의 믿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며 예수를 신앙하였다. 죽어도 살아난다는 믿음이 순교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로써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세상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감당 못할 만큼 담대하고 당당하며 언제 어떤 경우에도 무릎 꿇지 않는 자존감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믿음의 선배들은 그런 부활의 믿음으로 세상을 이겼다. 기독교인들이 19193.1운동을 주도한 것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절한 것도, 공산주의자들의 폭력 앞에서 독재와 싸울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부활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부활 신앙이 있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부활의 신앙이 있기에 우리는 정의라는 말을 할 수 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기에 정의로워야 하고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거짓과 위선에 대하여 예수처럼 저항하고, 정의를 온몸으로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예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삶의 자세이고 태도다.

그러나 과연 오늘 우리의 모습이 부활을 믿는 사람의 모습인지 되물어보아야 할 것 같다. 부활 신앙은커녕 우리는 이미 자본의 힘에 무릎 꿇은 것은 아닌가? 교회 권력과 돈 앞에서 우리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정의로워야 할 교회의 정의는 실종되었고 탐욕만 남아 있는 현실이 되었다. 교단도 교회의 지도자들도 모두 돈 앞에 정의를 팔았다. 돈이 부활의 신앙을 접수하고, 정의로워야 할 교회와 지도자들의 눈을 어둡게 만들었다. 돈으로 정치를 하고 돈으로 세습을 눈감아 버리는 오늘의 우리를 바라보실 부활의 주님이 무섭다. 두려워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돈 앞에 저항하기를 포기한 교회의 현실이다. 그런 교회는 죽는다. 정녕 죽어 다시 부활할 수 없다. 정의로운 교회와 지도자만이 부활한다. 그것이 역사이고 예수의 진리다.

예수의 부활은 우리를 정의로운 삶으로 인도하지만 돈으로 살고자하는 자들에게 예수의 부활은 없다. 돈으로 예수의 부활 신앙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이 우리의 모습인 것이 아프다. 이제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 섰다. 정의롭게 살다가 죽어 다시 부활할 것인가 아니면 잠깐 돈 앞에 정의를 팔아먹고 완전히 무덤 속에 갇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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