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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교회, 일상을 마주하다!(2019 가정교회마을연구소 정기세미나 발제문)

교회, 일상을 마주하다! (2019 가정교회마을연구소 정기세미나 발제문)

일상, ‘()’을 마주하다

 

()나섬공동체 대표 유해근

 

. 내가 길 위로 나온 사연

 

나는 1987년 장로회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군목으로 입대하기 위하여 바로 목사안수를 받았다. 40개월이라는 짧은 군목시절이었지만 지나치리만큼 치열하게 생활하였다. 군생활 중 때로는 심각하게 우려될 만한 일들이 여러 번 있었다. 주변의 선배들과 부모님의 걱정은 지금 생각할 때에 참으로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일이다. 나는 젊었고 또한 교만했다. 무서운 것이 없었고 무엇에든 자신만만하였다. 1990년 군목을 전역할 때에 나는 몇 가지의 선택을 하여야 하는 기로에 있었다. 제대 후 무엇을 할 것인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며 너무도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청년으로서, 젊은 목회자로서 고민하고 결단하여야 했다. 그때 새로움과 창조 그리고 미래라는 화두가 오늘의 나와 나섬을 만들었고 존재하게 했다.

 

1. 최고가 아니라 최초

 

장로회신학대학을 다니고 군목으로 생활하면서 전역할 즈음 내게 분명하게 주어진 목회와 인생에 대한 철학이 하나 있었는데 '최고가 아니라 최초가 되겠다.'라는 것이었다. 한국교회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보편적으로 가는 길이 정해져 있다. 신학교를 졸업하면 전도사로 인턴과정을 밟고 목사안수를 받은 후, 괜찮은 교회의 부목사, 그 후에는 어떤 교회의 담임 혹은 교회 개척, 선교사, 아니면 유학과 학위 그리고 교수가 되는 것 등등. 대부분이 그 중 하나의 길을 찾아간다. 선배들이 살았던 삶이니 그 길만을 생각하고 다른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삶을 꿈꾸었고 적어도 아류의 삶만은 거절하고 싶은 패기가 있었다. 왜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에게는 분명히 그런 인자가 있었다. 어쩌면 스스로 일반목회자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없음을 인식하고 선택한 어쩔 수 없는 타협점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최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시작하는 인생은 파격이 아니면 우연적 만남으로만 살아갈 기회가 온다. 군목 전역 후 아무리 찾아보았지만 하늘 아래 최초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어디론가 떠나 나의 생각을 정리해야 함을 느꼈고 급기야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마주한 첫 번째 경험이다.

 

2. 약자를 사용하시는 하나님

 

두 번째의 조건은 사회적 약자가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성서는 내게 과부와 고아 그리고 나그네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들임을 가르쳐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은 그런 보편적 구원을 설교하고 전파하셨다.

예수님의 조상 중 라합과 룻은 이방인이고 과부이며 기생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이름은 자랑스럽게도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 성서는 왜 지우고 싶은 그녀들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기억하려 했을까? 가나안의 기생이고 모압에서 이주해 온 여성이 예수의 할머니가 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일까?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는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세상이다. 아벨이 가인을 이기고, 이삭이 장자 이스마엘을 눌렀으며, 야곱이 에서를 제쳤고 요셉이 형들을 굴복시켰다. 어린 소년 다윗이 골리앗이라는 장군을 제압한 이야기는 약자가 강자를 이긴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며 은혜이고 구원의 전략임을 발견했다. 우리가 읽은 성서의 말씀은 곧 우리의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 이로써 약자들과 함께 하는 삶이 내가 선택할 미래의 조건이 된 것은 필연이었던 것이다.

 

3. 성안에서 길 위로

 

1992년 늦은 가을 뜻밖의 제안을 받고 나는 구로공단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나를 향한 하늘의 뜻이라 믿으며 결단했다. 기독교아시아연구원에서 2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이주노동자와 함께 하는 공단지역을 사역지로 선택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었고 내가 약속한 조건을 지키기 위한 용기였다. 마치 아브라함에게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창세기 121절의 말씀처럼 구로공단으로 들어가라는 제안은 내게 거대한 울림이었고 부르심이었다. 그래서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떠나려던 유학을 포기하였다. 주류교회와는 담을 쌓고 비주류, 아니 철저한 아웃사이더의 불편한 운명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때는 젊었기에 그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선택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다.

그러나 성안에서 나와 길 위의 삶을 사는 것은 설레지만 광야 같이 척박한 삶이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기대하지 못했던 행복감을 느끼는 삶이기도 하다. 나는 광야로 나아갔고 그 광야의 삶은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중독성이 있었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히말라야 사람들과 사막의 베드윈족이 그랬듯이 말이다.

광야의 삶은 나에게 치명적 고난을 던져 주었다. 실명의 불행은 비극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감사의 조건이 되었다. 비극과 감사, 고난과 은혜는 동시적 사건이다. 길 위의 삶은 그런 의미에서 신앙고백을 통해서만 해석될 수 있다.

 

. 나섬의 현장 이야기

 

1. 나섬 공동체

 

나섬은 '나그네를 섬긴다.’는 뜻이다. 21세기는 이주민의 시대다. 국경과 경계가 허물어지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주의 삶을 선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나그네 이주민은 2016200만 명을 넘어섰고 2019년 현재 약 240만 명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유학생, 난민 등의 모습으로 입국하고 있다. 나섬공동체에는 몽골, 인도, 필리핀, 베트남, 이란, 중국 등 6개국의 이주민 공동체가 있으며 매 주일 국가별 예배 및 자조모임을 갖고 있다. 일반적인 이주민 선교단체가 공단지역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과 달리 나섬공동체는 공단지역과는 거리가 먼 서울의 장로회신학대학 인근에 위치해 있다. 이 또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2. 역파송 선교사 파송과 새로운 패러다임

 

나섬은 오랫동안 이주민 선교를 해왔다. 나그네로 찾아온 이주민들은 선교의 소중한 대상이다. 나그네를 순례자로, 순례자를 다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역파송하는 사역을 해왔다. 나섬의 역파송 선교는 세계 곳곳에서 그 열매가 매우 풍성하게 맺어지고 있다. 몽골에서부터 인도와 터키 그리고 베트남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자국민 선교를 위하여 열정적으로 헌신하고 있다.

역파송 선교는 지금까지의 선교와는 달리 새로운 전략이며 그 의미는 특별하다. 그동안 현지인 중심의 사역이 없진 않았지만, 이주민들을 훈련시켜 역으로 보내는 전략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한국 교회 안에서 성장하고 훈련되었기에 한국 교회와의 정서적 연대감은 물론이고 한국교회의 선교적 열정도 이해하고 있어 매우 긍정적인 시너지가 일어날 수 있다. 특히 후에 언급될 뉴라이프 선교회의 시니어 선교사와의 융합은 우리 교회와 선교지 모두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다.

 

3. ‘재한몽골학교나섬아시아청소년학교

 

이주민 자녀들을 위한 교육 선교는 내가 가장 자랑하고 싶은 사역이다. 19998명의 아이들과 함께 시작된 재한몽골학교는 현재 약 300명의 몽골학생들이 다니는 아름다운 학교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와 몽골 정부 양국으로부터 정식 학교로 인가를 받았으므로 우리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은 몽골 대학은 물론 한국 대학에도 입학이 가능하다. 우리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장기적으로 몽골의 미래를 담보하는 인재로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학교는 2014년 서울시로부터 부지를 제공받아 학교를 신축하였으며, 주일이면 예배와 이주민 선교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20183월부터 시작된 나섬아시아청소년학교는 서울시 교육청으로부터 위탁받은 대안학교다. 현재 중학교 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 베트남, 필리핀, 중앙아시아 등 다문화 가정의 중도입국자녀들을 위한 대안학교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4. ‘뉴라이프 선교회와 다시 찾은 다음세대

 

2025년이 되면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가 된다. 저출산 초고령의 인구 문제는 한국교회의 문제와 직결되며 우리의 미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시니어 은퇴자들이야 말로 우리의 다음세대다. 다음세대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필요하며 관점의 전환이 요청되는 대목이다.

나섬은 2012년 초교파로 시니어 선교회인 뉴라이프 선교회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정말 작고 연약하게 보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창대해지고 있다. ‘뉴라이프 선교회뉴라이프 비전스쿨을 통하여 시니어 선교사를 훈련시키고 그들이 동대문 지역의 이주민들을 선교할 수 있도록 중구 광희동 지역에 동대문 비전센터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뉴라이프 비전스쿨을 수료한 시니어 선교사들 중에는 나섬의 역파송 선교사들과 함께 세계선교의 현장에 나가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현재 몽골, 필리핀, 베트남 등지에서 멋진 후반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 연합과 연대

 

얼마 전 나는 뉴라이프 선교회 회원들과 함께 전남 구례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에서 자연드림이라는 협동조합 형태의 기업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뜻밖의 경험이었다. 그곳에서 한국교회의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며 어떤 영감을 발견했다. 연합과 연대를 통해 우리 문제를 해결할 길이 있겠구나! 깨달아지는 순간이었다.

작은 교회와 마을교회의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함께 사역하고 더불어 나누는 것만이 우리 모두 살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인 것이다. 특별히 다문화 이주민 사역과의 연합과 융합의 모델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이주민 선교와 역파송, 그리고 시니어들의 뉴라이프 선교회는 더불어 나누며 섬기는 소중한 사역들이다. 나섬은 그 모델이 되려고 한다. 한국교회의 딜레마는 새로운 영성의 발아지점이며 창조적이고 실험적 목회를 할 수 있는 기회임을 믿는다.* (20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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