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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262 미움 받을 용기와 개혁

 

예수의 생애와 사역을 들여다보면 뚜렷한 의도와 목적의식이 보인다. 그것은 동시대 유대주의에 대한 강한 저항과 개혁에 대한 의지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율법주의, 유대적 독선과 아집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존재했음이다. 바리새인들과의 논쟁과 갈등은 공생애 3년 동안 쉼 없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주류 집단에 대한 저항의식과 율법적 폐쇄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결국 기존의 틀을 부수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갈등과 논쟁 그리고 충돌은 결국 예수의 존재양식이었으며 본질적 사역이었다. 주류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얼마나 미운털이 박힌 존재였던가 말이다.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있다면 기존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버림받는 것 그 이상이다. 그들의 저주와 엄청난 반감을 어떻게 극복하며 나갈 것인가이다. 유대인인 예수가 유대인으로부터 버림받고 박해를 받는 것은 곧 유대공동체로부터 격리된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가졌을 두려움은 기존의 기득권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살았던 삶의 모든 근거를 송두리째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대인으로서 유대교와 율법 그리고 그 율법의 배타성에 익숙한 젊은 청년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거부하고 거절당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잔인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예수는 당당히 유대주의와 맞서고 자신의 기득권마저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한마디로 용기와 결단 없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음을 알았던 것이리라.

루터도 1517년 종교개혁을 이루어가면서 마찬가지의 고민을 했었을 것이다. 이단으로 정죄를 당하고, 파문을 당하고 살해의 위협을 감당하기에 그는 여리고 약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 순간을 이기게 해달라는 기도와 더불어 두려움을 이기며 나아갔다. 교황이라는 절대적 권위 앞에서 당당하기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 누가 교황과 중세의 권력자들 앞에서 싸울 수 있었을까?

나는 요즘 한국교회의 현실이 마치 그때의 상황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자와 맞서는 작은 교회의 모습이 그럴 것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대형교회 앞에 서 있는 연약한 목회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한없이 안타깝다.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잠잠하라는 힘 센 자들의 고함소리에 경기를 일으킬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선다. 나는 두렵고 무섭다. 그러나 말해야 하고 저항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방법이며 예수와 루터가 가르쳐준 존재양식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아들러 심리학의 해설서 같은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을 읽었다. 미움 받을 용기가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미움 받을 용기가 있어야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미움 받을 용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다. 예수와 루터는 기존의 기득권을 가진 이들의 힘과 권위에 도전했다. 미움 받을 용기로 말이다. 미움 받을 용기를 넘어 죽을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나는 과연 미움 받고 죽을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이 있는 것일까? 그래야 개혁할 수 있을 것인데 참으로 무섭고 두려운 현실이다.

오늘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우상화된 돈과 권력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그래서 미움 받고 혹시 매장될 수도 있다는 현실 앞에서도 용기를 잃어버리지 않는 담대함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비겁하고 비굴하다. 현실의 힘이 더 무섭고 두려운 까닭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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