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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270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내가 신학교에 다니던 시절 러시아의 실존주의 철학자였던 베르자예프라는 사람의 '거대한 그물'을 읽었다. 젊은 신학생시절 나는 그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었고 도전을 받았다. 그 후로 나는 입만 열면 '정신문화를 위한 자유 아카데미'를 만들겠다고 했었다. 베르자예프의 책에서 꿈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혼자서 살아라. 자유인이 되어라. 황제가 되어라.'고 말했다. 나는 그를 통하여 젊은 시절 방황과 고민의 단초를 알았으며 자유에 대한 그리움 같은 원초적 진리를 몸으로 발견하였다. 나는 자유인이 되는 것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그 자유는 내가 목회자로 살아가는 내내 나를 지배하는 정신세계의 전부가 되다시피 하였다.

나는 자유인으로 살고 싶다. 어느 누가 자유를 그리워하지 않겠는가마는 그럼에도 자유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과연 우리가 자유를 말한다면 그 자유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적어도 자유는 누군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나를 옥죄이고 내가 가진 가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적어도 나에게 자유는 돈으로부터의 자유, 모든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조작되고 오도된 현실의 모든 굴레로부터의 자유다. 한국교회에서 목회자로 살아간다는 것에서 나에게 그런 자유인에 대한 소망은 요원할지도 모른다. 나처럼 나섬의 목회자라면 더욱 그렇다. 나그네를 섬기면서 무슨 자유인가? 언제나 누군가의 지원과 도움으로 생존해야 한다는 선입관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가 말이다. 가난하며 아무런 힘도 없고 의지할 것 없는 나그네들과의 동거는 언제나 나를 불안하게 하거나 비굴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갑()의 삶을 꿈꾸어 본적이 없다. ()이거나 아니면 그 아래 병()들의 그룹으로 살아야했다. 갑과는 동떨어진 존재로 말이다. 더욱 눈이 안 보이는 치명적 생채기까지 나는 아예 논외의 존재로, 아니면 투명인간처럼 취급받아야 했다. 그런 선입관과 나를 얽어맨 모든 조건들은 당연히 나를 열등감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하였다. 나는 정말 고통의 삶속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가장 비루한 삶을 살았다. 비루하다 못해 그 고통이란 (나 자신이 느끼는 고통이겠지만), 어느 누구도 나를 고통 속으로 몰아가지 않았다고 말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소외와 열등감 그리고 비루함의 삶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자유를 꿈꾼다. 자유를 꿈꾸는 것을 넘어 자유인으로 살겠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나는 진정 자유인이 되려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이 교회의 현실에서 언제까지 타협하고 묻어가는 인생으로 살 것인가? 언제까지 침묵하는 카르텔의 일원으로 살아야 하는가?

교인수와 헌금액이 권력이 되고 그 권력으로부터 조금도 자유 할 수 없는 교회의 현실에서 나는 죽는 날까지 또 비루함과 비굴함과 열등감과 선입관으로 가득한 눈초리와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여기서 접는 것이 옳다. 접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맞다. 다른 길이다. 그렇다! 나는 다른 길로 간다. 다시 최초의 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 내가 나섬의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갖고 있던 최초가 되고 싶다는 그 초심으로 돌아가면 된다.

길이 없으면 내가 길이 되고 길을 만들면 된다.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에 대하여 나는 깊은 고민을 한다. 여기서 싸우고 다투어야 한다면 나는 아니 나 같은 우리 모두는 패배하고 절망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때가 되었다.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양질 전환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변해야 한다. 여기서 멈추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새로운 대안과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

이제 다시 자유를 찾아 떠나는 시간이 되었다. 다시 자유를 고민하고 자유인으로 살아가겠다고 약속했던 먼 과거를 기억해 내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자유한 삶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가? 한국교회에서 목회자는 자유한가? 자유한 목회자가 없다. 자유한 목회자를 찾을 수 없다. 설교에서부터 모든 목회적 결정에 이르기까지 과연 자유를 말할 목회자는 없다. 자유에 대하여 설교한 목회자는 보았어도 진정 자유한 목회자는 보지 못했다.

지금 나는 자유한 목회자를 꿈꾸며 고민 중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슨 결정을 하여야 하는가? 참으로 깊은 고민의 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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