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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281 나는 공포와 욕망 앞에 무너지는 도그마를 보았다

   인간을 사로잡는 두 가지 심리가 있다면 하나는 공포이고 다른 하나는 욕망이다. 욕망하는 것과 공포의 심리는 경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인간의 심리를 잘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인생에서 성공한다. 그러나 이런 심리는 비단 경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때로는 신앙생활에도 적용된다. 결국 인간의 마음이 모든 것의 중심이고 그 마음과 심리가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거짓일까? 때로 '나는 두려워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할 때에도 그것은 사실이다. 욕망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실존이다.

야곱은 형과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광야 길을 걷는 동안 히브리백성은 하나님의 끊임없는 은혜를 경험하면서도 여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야곱의 욕망과 히브리백성의 두려움, 이는 내 안에 있는 두 가지 모습이다. 나 또한 욕망과 공포라는 두 가지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내안에는 언제나 근거 없는 낙관과 이유 없는 비관이 교차한다. 그것이 때론 나에게 희망을 주고 때론 나를 괴롭힌다.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은 두 가지 마음이 나를 사로잡는 날이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원하는가? 질병과 가난과 갈등으로부터가 아닐까? 많은 병을 짊어지고 사는 나에게 건강이라는 화두는 늘 기도의 제목이다. 눈이 안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괴로운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어디가 아프기 시작하면 혹시 심각한 병이 아닐까하는 마음에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돈의 문제는 더욱 그렇다. 근심의 시작은 돈이었다. 돈이 있어본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았음으로 돈으로부터의 해방은 나의 인생에 큰 화두다. 그런데 돈은 공포와 동시에 욕망을 자극한다. 돈은 욕망이면서 동시에 근심이고 공포의 주된 대상이다. 돈과 함께 따라다니는 것이 가난이다. 가난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타인과 비교하면서부터 가난은 더욱 우리 인생을 아프게 한다. 가난은 상대적 가치이므로 그것을 대하는 내 자신의 마음만 잘 관리하면 언제든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요즘 들어 내 자신이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조금씩이나마 공포와 욕망으로부터 자유하고 싶다. 아울러 달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인데 어찌 사소한 문제 앞에 늘 일희일비하며 살 것인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공포다. 그까짓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로 세상이 거의 패닉상태에 빠지다니 정말 우리의 삶이란 별 것 아님을 느끼게 된다.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공포심으로 가득한 세상의 모습은 우리의 존재가 형편없이 보잘 것 없음을 나타낸다.

바이러스에 노출된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편견과 혐오의 대상이 되고, 병에 대하여 지나치게 공포스럽게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이 너무 가볍다. 정치인들은 그런 기회를 정치적 유불리로 또는 당파적으로 이용하고, 언론은 바이러스 마케팅으로 돈을 벌 수 있음을 눈치 챘는지 그것으로 한탕을 챙기려 한다. ‘경제는 심리라는데 장사하는 사람들로부터 자동차 만드는 회사들까지 온 경제가 위태롭다. 거꾸로 마스크 장사하는 사람들은 대박을 쳤다는 소문이 들리니 참으로 우리는 가벼움을 넘어 바람에 나는 먼지 같다. 교회에서도 바이러스 공포가 지나쳐 모든 집회에 우려를 나타내고 오래전에 예약된 약속들이 취소되기도 한다. 잡혀진 일정들이 취소되니 나는 오히려 바이러스의 공포로 한가해진 오후를 즐긴다.

공포 혹은 욕망을 다시 생각해본다.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온다. 공포도 욕망도 그 본질은 마음의 문제였다. 바이러스도 마음으로부터 나온 오염된 별종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교회에 한번 왔다 갔다는 이유로 예배가 취소된다면 우리는 바이러스와 하나님 둘 다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처음부터 예배는 바이러스보다 약한 의례였던 것이다. 차라리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계시다고 더 강하게 말했어야 옳다. 그래서 예배는 예배당이 아니어도 된다고 말해야 했다. 예배는 언제든 집에서 드려도 되는 것이라고, 주일 성수 같은 것은 목사들이 예배를 강조하기 위하여 만든 목회적 수사일 뿐이라고 말이다. 바이러스에 그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예배를 보면서 나는 우리의 성곽이 그리 강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래서 차라리 희망을 느낀다. 지금 교회와 그 성은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는 도그마였을 뿐이라는 말이다. 별것 아닌 교회는 버리자. 도그마에 갇힌 교회는 그 껍데기를 벗겨내자. 진리만 남고 도그마는 쓰레기라고 말하자. 바이러스가 우리의 헌 껍데기를 보여준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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