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톡 324 이쯤해서 갈라서는 것도 괜찮다 > 노마드이야기

본문 바로가기


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 324 이쯤해서 갈라서는 것도 괜찮다

    바나바는 바울의 선배이며 특별히 바울의 사역에 있어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 준 사도다. 바나바의 선택이 있었기에 바울이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 교회의 직제로 치자면 바나바는 담임목사 격이요 바울은 바나바를 보필하는 입장이라 해도 될 것이다. 바나바는 바울을 직접적으로 키워준 시니어 사도이다. 그런 바나바와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는 대판 붙었다. 바나바의 조카뻘인 마가 요한의 처신을 놓고 두 사람 간에 이견이 생겼기 때문이다. 2차 전도여행을 앞두고 바울은 마가를 더 이상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했으나 바나바는 바울과는 다른 입장을 갖고 있었다. 결국 바나바와 바울은 그 일로 갈라서게 된다. 그 일이 그들 사이에 동역이라는 관계마저도 끝내는 결과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인간은 서로 다른 생각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갖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섭리가 얼마나 오묘하고 다양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동일한 사건과 상황을 바라보면서도 서로 다른 의견을 낼 수 있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쯤에서 갈라서는 문제를 깊이 생각할 때가 되었다. 개혁하려는 사람과 개혁을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런 긴장과 갈등을 더 이상 가져갈 필요가 없다. 모든 교회와 교인이 같은 입장을 가질 수 없다면 서로 다른 생각들에 대하여 비판하거나 다툴 것이 아니라 갈라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습하려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사이에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면 굳이 함께 가야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차별금지법에 대하여도 그렇게 갈등할 것이 아니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겠다. 정치적 목적으로 신앙을 이념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에 대하여 그 길을 따라가겠다는 사람과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왜 한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 차라리 갈라서서 각자의 관점에서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교권을 갖고 그 교권으로 교회를 지배하려는 세력과 그 교권에 대하여 저항하려는 세력이 더 이상 다툴 것이 아니라 각자의 신앙 양심대로 살면 될 일이다.

또 분열이냐고 묻는 이들도 있겠지만 분열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더 함께 갈 수 없어서 이혼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갈라서는 것이 삶의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명분이다. 분명히 갈라서는 이유를 달자. 개혁과 반()개혁으로 나누는 것이다. 개혁하지 못하겠다면 그 들은 그 길을 갈 것이고 개혁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다른 쪽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 잊지는 말자. 역사 속에 누가 정의로웠는지 그리고 누가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지는 기록해 놓아야 한다. 역사마저 갈라놓을 수는 없다. 역사는 오직 하나의 평가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누가 옳았는지 누가 반()개혁에 앞장서 분열의 영을 키웠는지 가르쳐 줄 것이다.

결국 역사가 누가 정의로웠는지, 누가 기득권을 소유하고 지키려고 이렇게 교회를 분열시켜놓았는지를 가르쳐 줄 것이다. 그러니 각자의 길로 갈라서는 것이 좋겠다. 다만 갈 길을 가기에 앞서 먼저 나가라 하지는 말자. 나갈 사람은 나가고 남을 사람은 남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자유다. 개혁을 위한 비상총회를 구성하는 길이든 기존의 반개혁적 방향으로 남든지 그것은 알아서 할 일이다. 한 교단에 두 총회가 있어도 좋다. 총회가 두 개로 나뉘어 각자의 선명성과 개혁성 그리고 공익성을 다투면 좋다. 그래서 누가 옳았는지 역사의 판단을 받아보자. 그래서 마지막 남은 자들이 역사의 승자로 기록되기를 기다려보자. 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택을 했는지 주목해 보자.

 



hi
   


[04982]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로 1(광장동 401-17)
나섬공동체 대표전화 : 02-458-2981 사단법인 나섬공동체 대표자 유해근
Copyright © NASOMCOMMUNITY. All Rights Re 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