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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실패한 목사와 망한 교회
실패한 목사와 망한 교회>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1~8

‘실패하고 망한 교회와 목사들에게 복이 있기를...’
복음서 산상수훈 팔복을 읽다가 불현듯 내뱉은 말이다. 정말 실패하고 망한 교회와 목사들에게 복이 있었으면 좋겠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선배 목사님이 돌아가셨다. 암 투병 일 년 만에 소천하신 것이다. 오랫동안 그 선배 목사님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차라리 잘 가셨다는 생각이 든다. 개척교회를 시작하고 열심히 목회했지만 여건이 그리 호전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목회를 접고 먹고 살길이 막막해 택시 운전을 하기도 했다. 택시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더 이상 택시운전을 할 수 없을 즈음, 중국 선교사로 선교를 떠났다. 힘겹고 어려운 사역이었지만 행복하게 사역했다. 한국에서 보내주는 지인들의 얼마 안되는 선교비였지만 열심히 사역했다. 누가 알아주는 일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아시겠지 하면서 최선을 다해 이곳저곳을 다니며 열심히 교회와 현지 지도자들을 세우고 섬겼다. 그러나 그의 삶은 늘 쪼들리고 궁색했다. 그리고 암에 결려 생을 마감하였다. 

그 선배의 영안실을 찾던 날, 나는 속으로 그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선배님 더 이상 고생하지 않게 하늘나라로 부르셨으니 감사합니다.’


“형님, 미안해. 내가 가난한 목사여서...”
마지막 선배 목사님을 하늘나라로 보내던 날에도 나는 그렇게 말했다. 목사는 실패해도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알량한 자존심과 그나마도 궁색한 믿음 때문이다. 자신은 망했어도 하나님은 아실 거라며 위안하는 그 실패한 목사의 뒷모습은 더 슬프다. 

그 실패한 인생 앞에 목사라는 딱지가 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목회를 하다하다 안되면 멕시코로 몽골로 선교를 떠나는 저들을 누가 욕할 수 있을까? 선교지가 실패한 목회자들의 쓰레기통이냐고 손가락질을 하지 마라. 그것은 구조의 문제이지 한 개인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그들의 실패는 일정부분 자기 책임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실패한 이들이 전부 짊어질 책임은 아니다. 어차피 실패와 성공이 뚜렷이 갈려질 수밖에 없는 밥그릇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오랫동안 돼지를 키웠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였으니 꽤나 오랫동안 돼지를 키우신 것이다. 한 어미 돼지는 적게는 서너 마리에서 많게는 열 마리가 넘는 많은 새끼를 낳는다. 그런데 그 새끼 돼지들 모두가 다 살찌고 잘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어미 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기라도 한다면 그 새끼 돼지들 가운데는  심각한 양극화가 일어난다. 어미돼지의 젖꼭지에 한계가 있으니, 모든 돼지가 다 젖을 물수는 없다. 모든 젖꼭지에서 골고루 젖이 다 나오는 것도 아니다. 힘이 센 놈이 약한 놈들을 밀치고 젖이 잘나오는 어미젖을 독점하는 것은 동물의 세계 그대로이다. 못 먹고 늘 뒤쳐지는 돼지 새끼는 점점 퇴보하고 만다. 어미  젖은 한계가 있어 모든 새끼에게 골고루 그 영양분을 나누어 주지 못한다. 강한 놈만 살아남는 약육강식이랄까? 
그것이 구조의 문제다. 돼지 젖꼭지의 구조처럼 한국교회도 구조의 문제다. 강하고 힘이 센 놈만이 성공한다. 어미돼지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돼지 새끼들이 커 가듯이, 하나님의 뜻과도 전혀 별개로 성공과 실패가 나누어질 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와는 다르다. 그저 경쟁에서 이겼을 뿐,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나 저주는 아니다. 돼지 새끼들처럼 말이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는 약해서 먹지 못해 지질한 돼지 새끼들만을 골라 손수 돼지 젖을 먹이셨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는 강한 놈들은 다른 곳으로 격리 시켜 놓으셨다. 약한 돼지 새끼들만 모아놓고 잘 나오는 어미젖에 입을 대 주었다. 그제 서야 힘이 약한 돼지는 힘차게 젖을 빤다. 배가 불러 입에서 어미젖의 하얀 사랑이 흐를 때까지 아버지는 한 마리 한 마리 그렇게 약하고 작은 돼지에게 특별한 기회를 주셨다. 

하나님도 그렇게 실패하고 망한 지질한 나 같은 목사들만 뽑아서 하늘의 사랑 나누어 주실지도 모른다. 아직 그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 오늘 팔복의 말씀이 자꾸 그런 축복으로 들려온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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