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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이야기

   
노마드톡447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진행 중

왜 예수는 죽는 순간까지 한마디 변명조차 하지 않으셨을까? 왜 침묵으로 일관하셨을까? 그가 중죄인이 아닌 것은 빌라도마저도 인정하지 않았던가. 만약 스스로 자신을 변호하려 했다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철저히 종교적인 사건이었다. 다만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뿐이다. 유대 성전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예수를 처형당하게 한 것이었을 뿐 예수가 진짜 유대인의 왕으로 정치적 해방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빌라도도 인정한 바다. 그 자신이 예수가 무죄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예수가 죄가 없음을 스스로 변호하였다면 십자가 처형이 가능하였을까 말이다. 종교적 사건을 이념의 사건으로 만든 것은 종교지도자들이었다. 그러니까 오늘도 종교를 빙자하여 정치적 놀음을 하는 자들을 경계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목사라는 자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교인들을 이념의 정치 놀음에 끌어들이는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 

안나스, 가야바 같은 예루살렘 성전주의자들은 그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예수를 죽여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하여 그들이 찾아낸 묘수는 예수를 이념의 희생자, 정치적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종교와 정치는 이렇게 상호 이해관계에 따라 거래가 가능한 관계다. 그리고 그런 의도를 알고 있었을 예수께서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스스로 십자가형을 수용하는 모습으로 죽음을 선택하셨다. 침묵하시는 예수의 모습은 처연하다. 왜 그는 죽음을 선택하셨을까 그리고 그 침묵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차라리 죽자!

오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목회의 자리를 고민한다. 조금만 비판하면 좌파라 하고, 세습과 교회 개혁을 말하면 공산주의자라 말하는 이들 앞에서 나는 예수의 침묵을 배운다. 종교를 정치적 이념의 희생양으로 몰고 가려는 이들에게서 예수의 죽음을 보았다. 예수는 지금 다시 이 땅에 오셔도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것이며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실 것이 분명하다.

왜 성전주의자들을 비판하면 빨갱이가 되는가? 왜 교회의 갱신과 변화를 말하면 좌파가 되고 세습을 비판하면 불경죄가 되는가? 나는 좌파가 아니다.

 

 

나는 예수처럼 종교의 변화를 말하는 것일 뿐 조금도 정치적 이념에 기대어 교회의 문제를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교회의 문제를 정치적 이념의 문제로 프레임을 바꾸려하는 것이다. 예수는 성전주의자들을 비판하셨다. 그의 비판은 예루살렘 중심의 성전주의자들에 대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의 문제의식에 정치적 이념에 대한 것은 없었다. 다만 성전주의자들이 그들의 욕망을 지키기 위하여 정치적 이념으로 예수를 죽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사건은 한국교회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누군가 예수를 죽이고 있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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