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지도자의 방문
(2006년 9월 7일 목요일, The UBpost)
몽골인이 따르고 있는 바즈라야나 불교와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는 현재 8일째 몽골에 방문 중이다. 그는 월요일 저녁 늦게 일본의 도쿄로부터 몽골국제항공 MIAT 편을 통해 도착했으며 Chinggis Khaan 국제공항에서 인도 대사관의 주재원들과 Gandantegchenlin 수도원의 소속원들과 30여개의 소수 민간 단체들로부터 환영받았다. 그를 사적인 방문자로 취급하는 몽골 정부의 대표인은 없었다.
중국은 노벨평화상의 수상자인 달라이 라마에 대해 티벳의 이탈자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어떠한 정부도 그를 공식적인 사제의 신분으로 허용하도록 승인하지 않았다. 월요일에 China 항공은 맑고 햇살이 강한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날씨”를 이유로 울란바토르(Ulaanbaatar)로의 비행을 지연시켰다. 2002년 달라이 라마의 지난번 방문 당시, 중국은 몽골과 함께 이틀 가까이 철도 접속로를 막았다.
연합 신문은 선대 라마가 고위 성직자들이 중국을 전복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낮은 일거리 순회를 유지하기 위한 만남을 결정했다고 말한 것을 인용해왔었다. 목요일에 베이징에서 외교부의 대변인은 달라이 라마는 종교적 명사일 뿐만 아니라 분리주의적 행동과 국가적 통합의 타격에 오랜 기간에 걸쳐 관여해 온 정치적 망명자라고 말했다. 중국은 다른 나라가 그에게 앞서 언급한 행동에 참여하도록 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굳게 막아왔다. 8월 8일, Xinhua 신문사는 티벳의 공산주의자인 Zhang Qingli가 달라이 라마의 해외 방문들의 목적은 중국에 함께 대항할 요인들을 모으는 것과 선교하는 것, 그리고 티벳 독립에 관한 그의 생각을 퍼뜨리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한 것을 인용했다.
화요일에 그가 예배를 위해, 그리고 종교적 명상을 위해 인도의 다람살라에 갔었던 대다수 라마승들과의 교류를 위해 그곳에 도착했을 때, 수천명의 몽골 불교신자들과 호기심 많은 구경꾼, 그리고 관광객들은 몽골의 중앙 불교회인 Gandantegchenlin에 참석했다. 다람살라는 달라이 라마가 그의 망명정부를 세운 장소이다. 그는 1959년 인도로 향하기 위해 티벳을 떠났다.
Gandantegcheling 수도원에서의 만남에서 달라이 라마가 도착했을 때, 군중들은 갈채를 보냈고 그들의 전통적인 선황색과 적갈색 법복을 차려입은 늙고 젊은 라마승들 사이에는 기쁨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는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사람들의 이마를 만지며 축복해주었다. 약 20분 동안의 그의 연설은 바른 삶과 선을 이끔에 있어서 구성원의 가치를 중요시할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앉아 있는 의자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사람들이 몰렸다.
공항에서 울란바토르 외곽에 위치한 Ikh Tenger 대통령 관저까지 모셔져 그곳에서 머물 예정인 달라이 라마는 몽골에서 각별히 비밀을 유지해야 하고 갑작스러운 변경을 조건으로 하는 매우 바쁜 일정이 짜여져 있다. 그는 다수의 개인적이고 공적인 설법을 맡을 예정이다. 가장 큰 모임은 수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중앙 경기장에서 예정되어 있다.
8월 21일 몽골의 외교부 대변인은 달라이 라마의 방문은 Gandantegchenlin 수도원의 초대에 의한 것이었다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의 몇 번의 지난 방문들 역시 “종교적 행보로만 생각”되어왔고, 그는 스스로를 “오직 종교적 행동”에만 제한시켰다. 이 성명서는 지금까지 달라이 라마가 그가 과거에 몽골에 있었던 때에 어떠한 정치적 행동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 방문 또한 그와 같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대통령 대변인은 N.Enkhbayar 대통령과 달라이 라마 사이에는 공식적인 만남이 계획되어 있지 않지만 개인적인 만남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1979 이래로 달라이 라마는 몽골에서 일곱 번의 여행을 했다. Dalai Lama라는 이 경어는 그자체가 몽골어이며 지혜의 바다를 의미한다. 첫 번째 대(大, Dalai) 라마를 고귀한 지위에 임명한 것은 몽골의 황제였다.
* 본 기사 수집 및 번역을 위해 숙명여대 유혜진 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