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출신 촐롱체첵 “꿈에 그리던 공무원 됐어요”
(공감코리아 2011/8/4)
“서울시 공무원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땐 정말 날아갈 것 같아서 시어머니랑 부둥켜 안고 펄쩍펄쩍 뛰었어요. 자원봉사를 하면서 평소에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 다문화 이주여성들이 한국사회에서 더불어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다문화 지원 사업을 만드는 현장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되다니 정말 꿈만 같아요.”
서울시 저출산대책담당관 다문화팀에서 만난 촐롱체첵(37·몽골출신 결혼이주여성)씨의 목소리에는 의욕이 넘쳤다. 촐롱체첵 씨는 지난 7월 1일부터 이곳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최근 고용한 외국 출신 계약직 행정공무원 4명 중 1명으로 선발되면서부터이다.
촐롱체첵 씨가 한국에서 생활한 것은 올해로 14년째이다. 몽골에서 대학을 마치고 무역회사에 다니던 중 한국지사로 발령이 나면서 첫 발을 내딛었고, 한국남자를 만나 결혼도 했다.
“곱창집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고 있는데, 옆자리에 있던 체구가 큰 남자가 러시아 말로 물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고등학교 때 배웠던 러시아말로 대답하면서 테이블에 있던 물을 건넸어요.”
물을 건넨 그 남자가 바로 지금의 남편이다. 당시 합기도 관련 세미나 참석 차 러시아에 다녀온 남자가 옆자리에 앉아있던 몽골여성을 ‘러시아에서 온 고려인’으로 착각해 말을 건넸고, 그들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후로 같은 동네에서 합기도 도장을 운영하던 그 남자와 자주 마주치면서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지요.” 남편 이야기를 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던 그녀는 이내 수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국에 와서 좋은 남편을 만났고, 좋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예쁜 아이들 셋이 생겼으니 제가 참 복이 많은가 봐요. 잘 하는 것도 없는 저를 이해해주고 ‘너는 뭐든지 잘할 수 있어’라며 믿어주는 시어머니와 남편이 저의 아주 큰 후원자이지요.”
7명의 식솔을 거느린 대가족의 주부로 사는 일이 결혼이주여성인 그에게 특히 녹녹치 않았을 터. 하지만 그녀는 “고부갈등 같은 건 없어요. 가끔씩 시어머니랑 막 껴안고 ‘충전’시켜달라고 하는걸요.(웃음)”라며 돈독한 가족애를 과시했다.
“저야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만, 중개업자들을 통해 처음 한국에 온 결혼이주여성들 중에는 아주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도 여럿 봤어요.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크고 나이차가 아주 많이 나는 데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시작해야하니 외롭고 배울 것도 너무 많아 힘들지요.”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지난해 9월에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에게 폭행을 당해 도망갈 때도 없었던 한 몽골 친구를 자기 집에 데리고 있던 몽골 여자가 찾아온 한국남편에게 죽임을 당한 사건도 있었어요.”
그녀는 다문화 지원팀 공무원답게 현실적인 해결책도 제시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외국인 여성들의 긴급상담번호 ‘1366’번을 런 비극은 없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촐롱체첵 씨는 현재 서울시의 다문화 정책이나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한울타리’라는 이름의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있다. 동시에 다문화 정책에 대한 의견을 직접 제시하는 ‘무지개 포럼단’도 운영 중이다. 또 서울 23개 구마다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현장에 나가 다문화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면서 모니터링 하는 일과 개선점을 건의하는 일도 도맡고 있다.
“공무원이 되니까 정말 좋긴 한데, 처음에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공직에서 쓰는 언어들이 보통 때 쓰던 말들과 많이 달라서 힘들기도 하고요. 업무가 많이 바쁜데도 부족한 저를 옆에서 많이 도와주시는 동료들 덕분에 미안해서라도 열심히 배우고 있지요.”
출근 한 달여가 지난 지금, 그녀는 작은 성과도 하나 거뒀다. “한울타리 회원이지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어버렸거나 연락처가 없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모두 다 찾아서 채워놓았어요. 그리고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결혼이주여성이 직접 공무원으로 일하게 됐다고 일일이 인사도 드렸지요. 덕분에 시민들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더라고요.”
윤기환 서울시 저출산대책담당관은 “서울시만 해도 4만 9천명의 다문화이주여성이 있다. 그들의 가족까지 합하면 12만 명이 넘는다. 그만큼 다문화에 대한 요구들도 많아지고 있다.“며 ”다문화 현장의 어려움과 의견을 제대로 듣고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4명의 아시아 이주여성을 공무원으로 선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윤 과장은 그러면서 “현재는 ‘다문화팀’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다문화과’로 확장될 시점이 곧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문화이주여성이 정책에 참여하는 비율도 훨씬 늘어날 것”이라며 “다문화 이주여성의 정책 참여비율을 좀더 늘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촐롱체첵 씨는 “다문화 가정을 돕는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만큼 좀더 체계적으로 일을 하고픈 마음에 대학원(연세대 사회학과)에도 입학했다.”며 “일주일에 20시간만 근무하면 되기 때문에 일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어서 좋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인순이의 ‘친구여’나 마야의 ‘진달래꽃’, 김현정의 ‘멍’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피곤하고, 힘들 때면 이런 노래들을 크게 부르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며 제법 직장인다운 멘트도 들려준다.
“행복은 맘먹기에 달려 있는 거잖아요. 몽골과는 많이 다른 한국에 와 생활하면서 물론 힘든 일도 많았지만 늘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꿈을 이루려고 애쓰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다른 분들도 ‘나만 왜 이렇게 힘들게 살지?’하며 자책하지 마시고 꿈을 갖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처럼 꼭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새내기 직장인 촐롱체첵 씨의 힘찬 출발에 아낌 없는 성원의 박수를 보낸다.
P.s : 지난해 여름 기사지만 한국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몽골인의 모델이 될것 같아서 기사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