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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톡 239 나그네는 하나님 나라의 자산

 

 

우리 나섬에는 이주의 경험을 가진 분들이 많다. 해외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본 이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주민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그네가 되어본 사람만이 나그네의 서러움과 고단함을 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쓰고 있다. 이번 미국방문은 약 10년만이다. 동생이 미국에 살고 있음에도 미국에 오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나섬의 사역 때문에 바쁜 이유도 있었지만 미국에 올 때마다 무척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오랜만에 미국행을 결심하였다. 이곳에서 나섬과 역파송 선교의 사역을 후원하는 교회에 선교 보고도 하고 후원자들을 만나 감사의 인사도 전할 겸 말이다.

미국 교민들 역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기에 나섬의 사역을 이해하고 동역하는 이들이 있다. 과부가 과부의 마음을 알고 나그네가 되어본 사람만이 나그네의 서러움을 안다.

내가 처음 나섬의 사역을 하게 된 배경에는 우리 교단 어느 선배 목사님의 권유가 있었다. 그 분은 자신이 선교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가장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선교는 바로 이주민 선교라며 내게 이주민선교에 헌신할 것을 설득했던 목사님이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선교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해외에 나가 이주민으로 살던 이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고 돌아와 우리나라 교회 성장의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후기 근대화 과정에서 갑신정변 이후 서재필, 이승만, 윤치호 같은 이들이 미국으로 망명을 했다. 후에 그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고 돌아와 독립운동이나 민족주의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기독교 정신을 우리 사회에 이식시킨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뿐만아니라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유학생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우리 사회에 들어옴으로써 기독교는 주류사회에 들어가는 필수조건이 되었다. 이는 이주의 경험과 기독교 신앙이 만나는 접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독교는 이주민 나그네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종교다. 이주민 나그네가 되면 누구든 고독하기 마련이다. 때로는 불안하며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당장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순간에 누군가의 도움이 있다면 그것은 결정적인 것이 된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먹고 살아야할지 모르는 그 엄청난 두려움 속에서 만나는 작은 사랑의 손길은 그의 인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래서 교회가 나그네를 돕고 이주민들의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은 선교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그런 선교적 경험을 하였다. 우리 교회의 역사에서 이주와 유학 등을 통해 만난 기독교적 신앙이 오늘날의 한국 교회를 만들어낸 소중한 자신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이주민 선교를 우리의 경험 속에서 새롭게 발견하여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가는 교민들을 보면서 나는 다시 이주민 사역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깨닫는다. 이들이야말로 자신의 민족을 향한 선교의 지렛대이며 징검다리이다. 이주민이요, 나그네가 선교의 보고임을 이곳 미국에서 절실히 깨달았다. 지금 우리는 이주의 시대를 살아간다. 전세계는 수 억 명의 이주민과 난민들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다. 하나님은 이주민과 난민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서의 한결같은 가르침은 이주민 나그네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다. 하나님께서는 디아스포라 노마드 유목민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세계 선교 역사는 물론 우리나라의 선교 역사와 교회사에서도 이주민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이기적인 국수주의 혹은 편협한 민족주의로는 하나님 나라를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바울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예수의 우주적 구원론이 옳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유대인만의 구원에서 우주적 구원으로의 확장이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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