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쿠데타와 이슬람 선교의 미래
터키가 바뀌고 있다. 그나마 터키는 이슬람 세속주의의 영향으로 이슬람의 색체가 비교적 약한 국가였지만 쿠데타의 실패로 현 대통령 에르도안의 권력이 상대적으로 강화되면서 세속주의를 무력화하고 이슬람의 색깔을 더욱 강화시키는 정책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터키는 1923년 1차 세계대전의 패망국이 되면서 오스만투르크가 무너지고 터키 공화국이 세워졌다. 당시 군부의 실세였던 아타튀르크가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 이슬람의 색체를 엷게 하는 이른바 이슬람 세속주의를 기치로 새로운 국가를 만들었던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양대 강국 사이에서 자주적 이슬람 국가를 만들기 위해 받아들인 이슬람 세속주의는 터키의 종교정책으로 기독교 선교를 그나마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군부 쿠데타의 실패와 에르도안의 강력한 지도력은 세속주의를 포기하고 이슬람의 색깔을 강화시키는 정책으로 변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슬람 국가 중 그나마 기독교 선교를 가능하게 했던 터키의 변화는 선교적으로 매우 중요하며 민감한 부분이다. 나섬에서는 이미 호잣트를 파송하여 선교하고 있었던바 매일매일의 뉴스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터키의 변화는 이슬람 선교의 미래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터키가 아니면 이슬람 선교의 현장은 점점 축소될 수밖에 없다. 터키는 이슬람 난민들의 집합소다. 이슬람 난민들이 모여들고 흩어지는 정류장 같은 곳이 터키다. 터키를 경유해 그리스와 유럽으로 흩어지는 난민루트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 터키다. 그런 터키에서 이슬람 세속주의의 포기와 이슬람 정책의 강화는 선교적으로 중요한 변화인 것이다. 세속주의는 이슬람이기는 하지만 이슬람의 색채를 가급적 드러내지 않겠다는 정책적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니까 이슬람 세속주의 덕분에 기독교 선교사들이 그나마 선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터키는 선교지이며 성지이다. 기독교의 출발지이며 선교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곳이다. 바울의 선교지이며 성지였던 터키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이슬람의 선교지이며 성지로서 중요한 국가다. 터키는 미래 이슬람 선교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며 베이스캠프다.
그러므로 터키를 모르고 이슬람 선교를 할 수 없다. 터키를 빼고 이슬람에 대한 미래 선교를 논할 수 없다. 터키는 이슬람 연합국가중 가장 중요한 국가다. 그런 터키가 세속주의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이때에 우리 나섬에서는 세미라는 터키 전도사가 공부를 하고 있다. 세미는 터키 북부인 삼순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그는 바울같은 인물이다. 성질도 그렇고 비전도 그렇다. 결국 선교도 사람의 문제다. 정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에르도안의 이슬람 세속주의 포기와 이슬람 종교의 강화와 나섬의 세미와 호잣트를 통한 새로운 선교는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진다.
선교도 전략이 필요하다. 마치 전쟁을 하면서 작전 없이 무작정 총만 쏘고 이길 수 없듯이 선교도 마찬가지다. 선교는 영적 전쟁이다. 정책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알아야 선교가 가능해 진다. 터키의 종교정책이 바뀐다면 기독교 선교도 바뀌어야 한다. 무작정 사람만 보내고 돈만 보내면 선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선교에도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 거다. 깊은 전략적 선택을 하여야 한다. 지금은 영적 전쟁의 시간이다. 선교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그 절박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