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청년들과 함께 하는 사회적 기업 창업이 북한선교다
북한선교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나는 이주민목회를 하면서 특별히 북한 이탈 주민들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2000년도부터 몽골에 탈북자와 함께 하는 평화캠프를 만들자고 주장하며 살았다. 재한몽골학교와 몽골문화원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몽골을 한반도 분단의 마지막 보루로 사용하실 것이라는 꿈을 갖고 있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 중에도 몽골이 통일의 완충지대가 될 것임을 믿으며 인내했다. 그렇게 십수년의 시간을 지내오면서 어쩌면 통일이 도적같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올해 개성공단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욱 구체화되었고 이제 더 이상 머뭇거려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과감하고 단호하게 북한 선교의 기치를 올린다.
나섬의 북한 사역은 두 개의 트랙으로 접근하려 한다. 하나는 몽골에 탈북자와 함께 하는 평화 캠프를 세워가는 것이다. 그것을 위하여 몽골에 탈북자 지원 NGO를 세우는 것이다. 물론 이 프로젝트에 몽골 정부의 묵시적 동의가 필요함은 당연하다. 우리는 그 길을 모색하고 개척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서울 인근에 평화캠프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이며 반드시 그 현장을 만들고자 한다. 여기에 덧붙여 탈북청년들과 함께 하는 창업지원 사역을 시작할 것이다. 한국 기독청년들이 참여하는 기독교적 가치를 지진 창업이어야 한다. 창업 아이템은 모든 영역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육체노동을 비롯하여 지식 산업에 이르기까지 어떤 아이템도 가능하다. 할 수 있다면 장로회신학대학과 같은 신학교에서부터 이 창업의 모델을 연구하고 지원하는 모임이 생기면 좋겠다. 가급적 청년중심의 선교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창업이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후원하고 신학교에서부터 바람이 일어나며 탈북청년들의 자발적 참여로 새로운 시너지를 일으킬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선 교회가 갖고 있는 물적 인적 자원의 나눔이 필요하다. 한국교회 선교 펀드를 만들자는 주장도 이 목적과 부합한다. 평신도들의 자발적 나눔이 필요하다.
탈북 청년들과 함께 만드는 사회적 기업은 지속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통일 이후에 북한의 연착륙을 지원하고 탈북청년들이 스스로 북한 땅과 그곳의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기업이어야 한다. 북한 이탈주민은 물론이고 통일이후 북한 주민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이면 더없이 바람직하다. 미국의 구글이 8만 명이 넘는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삼성과 현대가 수십만 명의 고용을 일으킨다. 대기업은 아니어도 가급적 많은 고용을 일으킬 수 있는 사업이라면 좋겠다.
탈북청년들이 그런 비전을 갖고 새로운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북한 선교의 대안이다. 몽골에서부터 한반도 곳곳에서 탈북청년들을 돕고 함께 하는 새로운 사회적 기업이 창업되고 평화 캠프가 만들어져 새로운 공동체 운동이 일어나며 그렇게 지속가능한 프로젝트가 곳곳에서 진행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다. 사드(THAAD) 문제로 세상이 어지럽다.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사드 문제가 민족분단의 문제를 치유하고 회복하게 하는 대안이라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정치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런 해결책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 어디 문제 해결의 방법이 하나만 있겠는가? 아니다. 대안은 만들어져야 한다. 교회와 기독교는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교회와 기독교마저도 사드가 대안의 전부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르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위에서만 대안을 찾는 공동체다. 말씀은 우리로 화평케 하는 자가 되며, 서로 사랑하라 하였고 피차 섬기라했다. 원수도 사랑하라 했으므로 우리의 대안은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만이 지속가능하며 완전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탈북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고 지속가능한 기업을 세우도록 돕는 것이 미래 북한 선교의 대안이다. 바로 지금 교회와 교인들이 나서서 북한 선교의 미래를 준비할 때가 되었다.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 북한 선교는 탈북청년들의 경제적 자립과 많은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을 창업하도록 돕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