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청년들과 함께 하는 담쟁이 학교
탈북청년들이 심각하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탈북청년들이 거꾸로 탈남을 하려 한다. 남쪽으로 찾아온 것에 대한 후회를 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으로 들어오면 잘 먹고 잘살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막상 남한에서의 삶은 비참하고 절망적이기 때문이다. 배경도, 인적 네트워크도, 가진 것도 없는 이들에게 남한에서의 무한경쟁의 삶은 넘을 수 없는 한계다. 남한의 청년들과 경쟁하여 이길 수 없다는 자괴감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이들에게 쥐꼬리만큼의 돈을 쥐어주고 교회에 나오라고 꼬드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돈에 끌려 교회에 나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회가 주는 돈이 끊어지면 언제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다고도 말한다. 돈을 주고 신앙을 살수는 없다. 그것은 신앙이 아닌 것이다. 지속가능하지 않는 교회의 행태는 탈북청년들 모두를 슬프게 한다. 어떤 청년들은 자기들이 거지같다고 아픈 마음을 토로하기도 한다. 돈을 주며 교회에 나오라는 북한 선교의 전략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해서 탈북자들을 선교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이미 우리의 북한 선교는 천민자본주의를 따라가고 있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고민하고 기도하며 준비한 새로운 통일선교프로젝트를 이제 시작한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그러나 교회차원에서의 도전은 특별하다. 창업을 지원하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한 교육이 그것이다. 교육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학교다. 가르치는 학교가 아닌 들어주는 학교다. 탈북의 이유가 서로 다르듯 그들의 이야기도 다르다. 그들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개개인의 욕구와 비전이 지속가능하며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하는 모습이 보인다면, 교회는 힘을 모아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서 몇 사람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고, 기업가 정신을 가진 청년들이 있다면 창업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
그 학교의 이름이 ‘담쟁이 학교’다. 담쟁이가 힘을 모아 벽을 타고 넘듯이 우리도 그런 꿈을 갖고 담쟁이 학교를 시작한다.
말을 많이 하는 학교가 아니라 들어주는 학교, 추상적이고 관념화된 창업학교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창업지원학교를 만들고 싶다. 기업인만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으로 성공하도록 돕는 학교다.
통일은 도적같이 온다. 지금 한반도는 엄청난 격동의 한복판에 서 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광야의 히브리 백성처럼 그렇게 방황하고 있다. 여기 담쟁이 학교가 그 방향을 제시하려한다. 가자, 새로운 미래로! 그래서 통일 선교의 그날을 준비하는 나섬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