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비교하니 그래도 살만하네
나는 사람의 오고감에 대하여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유목민 목회를 시작한 지 이미 24년을 넘기고 있건만 여전히 사람이 뒤돌아 나갈 때는 가슴이 아프다. 오면 좋고 나가면 씁쓸하다. 그런 것이 싫어 목회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찌어찌하다보니 한국인 목회를 하는 자리에 내가 있다. 외국인 선교는 어차피 오고 가는 것이 일상이라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니 오고감에 대하여 담담할 수 있지만 한국인 목회는 다른 것 같다. 한국인 목회가 어려운 것은 특히 작은 교회일 경우에 사람이 채워져야 한다는 일종의 구심력이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작은 공간이라도 누군가 채워지면 좋은 것이 그런 것이다. 그래서 채우는 목회를 하려 하는구나 싶다. 불과 교인 수 몇 명으로 하는 목회이지만 때로 그들 중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어김없이 마음이 아프고 그런 날이면 목회의 자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괴감 같은 것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우리 공동체에서 교회의 존재는 그나마 여러 사역 중 한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을 보니 목회가 전부라 생각하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것도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에서 열심히 전도하고 제자훈련 시켜 놓은 교인이 큰 교회를 찾아 떠나면 그 목회자의 마음은 어떠할까 싶다. 사람에 대하여 우리는 일방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내가 아프면 남도 아플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은 목회자도 예외가 아니다. 다른 교회에서 찾아오는 교인은 너무 좋고 감사하지만 때로 내가 싫다며 떠나가는 교인과 그 교인이 새롭게 찾아가는 교회를 생각하면 얼마나 언짢은가. 오면 좋고 떠나면 가슴 아프고 그런 목회자의 삶이란 얼마나 불행한가. 과연 그런 목회를 하여야 하는가 묻고 싶다. 그것이 목회라면 나는 그만 두어야 한다. 다른 곳에서 찾아오는 이들을 감사하게 받아 웃는 순간 그 반대편 목회자는 울고 있는 모습이 보여야 한다. 작은 개척교회에서 전도하여 성경공부시키고 웬만큼 키워놓은 교인이 큰 교회로 떠나는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아야 하는 그 작은 목회자의 왜소한 모습이 보여야 한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동업자의식이 없는 이유가 그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경쟁하여 이겨야 한다는 다분히 자본주의적이며 약육강식적인 초원의 룰이 지배하는 것이 교회의 문화라면 너무나도 아쉽다. 이기고 보자는 식의 경쟁과 무조건 교회를 키우는 것이 승자라는 문화는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그러니 무슨 전도법 세미나, 제자훈련 세미나, 교회성장 세미나에 줄기차게 찾아다니는 목회자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슬프다. 목회가 정말 슬프다. 목회자의 열등감과 자괴감, 때로는 갑질하는 승자로서의 목회자, 그 모든 목회자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교회의 크기가 목회자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공식이 오늘의 우리다. 그래서 큰 교회의 목회자는 큰 목사이고 작은 교회 목회자는 작은 목사라 불린다. 이건 현실이다. 하지만 나를 위로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작은 목회자였다는 사실이다. 불과 열두명의 제자들을 목회하시는 중에 그나마 두 명은 배반하거나 예수님을 팔아먹으려 했던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목회하신 예수님의 목회는 분명 우리의 잣대로 보면 실패다. 그렇게 보면 나섬교회는 예수님의 교회보다는 크다. 교인 수 열두 명은 족히 넘는 교회이니 나는 예수보다 큰 목회자인가? 혼자서 실소를 머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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