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의 카르텔을 해체하라
영화에나 나올 이야기를 듣고 사는 삶이 어색하다 못해 조금은 당황스럽다. 잘나가던 친구목사가 하루아침에 교회에서 사임했다 한다. 이유야 무엇인지 내 알 바 아니지만 그 친구의 삶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며칠 동안 내 머리에 잔영으로 남아 속이 편치 않다. 한국교회의 차세대 리더니 뭐니 하며 대형교회 목사들을 친구로 두고 여기저기 마당발처럼 설치고 다니던 그의 모습이 생각나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진다. 나와 아무런 관계없이 살아가던 주류교회 목회자들의 삶의 양태란 실로 모를 일이다. 자기들끼리만의 만남과 모임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래도 설마했던 이야기들을 이번 친구목사의 교회사임 과정에서 들으면서 목사들에게도 그런 계급이 있었나 싶어 예수님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차세대 지도자급의 목사들은 자기들만의 리그가 있다 거나, 적어도 몇 천 명 이상의 목회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의식 같은 것들을 가졌던 것의 결과일 게다. 특권의식은 또 다른 계급으로 그리고 한국교회의 패거리 목회의 문화를 양산한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집단적 특권의식이 교회와 목회자들에게도 있는 모양이다. 나는 그 말들을 내 친구목사가 교회를 나오는 과정에서 들었다. 정말 놀라운 발상이며 생각들의 조합이다.
그래서 신학교에서부터 줄서고 친구 맺고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모양이다. 육군사관학교 하나회니 알자회니 하는 것들이 교회에도 그 실체가 있었다는 것에 참 허무하고 가슴 아프다. 신학교에서 들려오던 진골이니, 성골이니 하는 말들이 사실이구나 하니 참 화가 나고 슬프다. 이런 빌어먹을 집단들을 예수는 뭐라고 하셨을까?
그런데 그렇게 잘나가던 친구들이 교회 안에서 말 못할 문제로 사임하고 나오는 날이면 그만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는 말을 실감하는 모양이다.
한방에 인터넷의 주인공이 되고 교계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이름이 거론되는 날이면 세상의 인심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님을 실감할 게다. 그렇다. 이 허무한 계급들의 조직력은 그들만의 리그다. 그들만의 리그를 예수께서 좋아할 리 없음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싶어 한다. 헛된 욕망이며 위장된 특권의식이다. 예수가 12명의 제자들로 공동체를 세우기 시작했다며 그들도 12개의 큰 교회들로 리그를 만들고 싶었을 게다. 그러나 예수 없는 리그의 끝은 허망한 위선이다.
왜 교회 안에 하나회며 알자회가 있어야 하는가? 왜 목회자들에게 그런 특별한 모임들이 만들어져야 하는가?
하긴 노는 물이 다르니 같은 물속의 물고기들의 모임이라 생각하면 더 이상 논할 이유는 없다. 그것을 논하는 것이야말로 비굴한 열등감의 발로라고 빈정대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웃기지마라. 적어도 우리는 예수라는 분이 주인이신 공동체의 종들이라 자칭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예수는 그런 바리새인들이나 산헤드린의 폭력적인 종교 집단의 피해자였다. 자기들만의 집단적 이익을 위하여 살던 이들이 예수를 죽였다. 자기들만의 리그를 위하여 예수를 죽여야 했던 그 역사의 음모를 교회와 목회자들이 반복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끼리의 의리도 별로 없어 보이는 허점투성이의 조폭도 되지 못하는 존재들임을 알아야 한다.
왜 교회 안에, 아니 목회자들에게 출신성분과 교회의 크기와 정치력이 있는가에 따라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싶어 하는 지가 참 의문스럽다. 조용히 목회하는 진실한 이들에게 할 짓이 아니다. 당장 그 특권의식으로 사로잡힌 이들의 허망한 집단의식은 해체되어야 한다.
특권의식과 계급의식에 사로잡힌 그 위장된 카르텔을 해체하라. 이것은 결코 예수께서 갔던 길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예수를 죽이려던 산헤드린이 다시 살아난 것은 아닐까. 교회를 계급화하고 목회자를 교회의 크기로 나누고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친 그 위선의 카르텔은 결코 다시 살아나서는 안되는 우리시대의 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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