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를 넘어 고비를 가다
필자가 가본 곳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단연 몽골의 고비사막이다. 고비라는 말 자체가 척박한 땅이라는 말이니 고비 사막이라는 말은 동어 반복인 셈이다. 어찌되었든 고비는 언제나 필자에게 고비 같은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고비에 있을 때는 고비가 싫어 떠나고 싶다. 그러나 고비를 다녀오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다시 고비가 떠오르는 것은 고비에는 중독될 만큼 강한 매력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0년 전부터 필자는 거의 2년에 한 번 씩 고비에 다녀왔으니 다섯 번은 다녀온 셈이다.
특히 이번에 다녀온 고비사막은 필자의 남은 삶과 목회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예감으로 충만했다. 그랬다. 나는 바뀌고 싶어 견딜 수 없이 목이 말랐고 어떤 새로운 길에 대하여 몹시도 갈급했다. 그때에 마침 고비를 찾은 것이다. '고비에서 길을 묻다'라는 주제를 정하고 고비를 찾아 나선 것이다.
울란바타르에서 우리가 가려는 우문고비까지는 거리는 약 600km라 했다. 거리에 비해 비행기 값이 턱없이 비싸기도 했지만 버스로 도전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마음 단단히 먹고 전세버스를 빌렸다. 우리 일행은 이른 아침 7시 30분에 울란바타르를 출발하였다. 혹시 모를 변수가 있을지 몰라 봉고차도 따로 준비하여 버스 뒤를 따르게 하였다. 하루 종일 버스 안에 갇혀 아무 것도 없는 끝없는 지평선만 바라보며 고비까지 갈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머리가 아파온다. 일행 역시 그런 지루한 버스투어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표정에 묻어났다.
거의 12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긴 여정이다. 중간에 돌아올 수도 없다. 아파서도 안 되고, 싫증이 난다고 되돌아오겠다고 투정을 부려서도 안 된다. 일행이 34명이니 그들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내야 한다. 혹여 일행 중에 성숙되지 못한 이가 있어 우리의 여정을 깨뜨릴 수도 있다. 만에 하나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니 갑자기 부담감이 몰려온다. 버스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긴 사막의 여행이다. 누가 이 고비사막을 버스로, 그것도 한꺼번에 34명을 이끌고 가려던 적이 있었던가. 더욱이 일행의 평균나이 65세, 세상말로 늙어 힘없는 이들을 모아 떠나는 미친 짓이라고 누군가 면박을 주어도 떠나고 싶었다. 혼자라면 걱정도 되지 않았겠지만 도전하고 싶었다. 그것은 필자가 좋아서 선택한 삶이며 필자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세상에 고비만큼 매력적인 곳이 또 있을까? 하긴 몽골의 북쪽에 있는 홉스굴 호수가 더 좋다는 사람도 있으니 고비든 홉스굴이든 그것은 모두 제 좋아 살아가는 것처럼 너무도 주관적이다. 사막이 어디 호수와 비견할만한 것이겠는가? 광야와 호수가 어떻게 한 판 인생처럼 경쟁할 수 있는가? 광야 같은 인생과 호수 같은 인생이 어떻게 한상에서 밥을 먹고 토론할 수 있는가? 사막은 사막이고 호수는 호수다.
고비를 좋아하는 사람과 홉스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떤 곳이 더 좋으냐고 묻는 것은 바보 같은 물음이다. 고비는 고비, 홉스굴은 홉스굴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고비와 홉스굴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무조건 고비다. 물론 홉스굴의 아름다움도 그 어떤 곳하고 비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고비만큼 매력적이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 곳은 없다. 고비에서 홉스굴을 말하지 말라. 홉스굴에서도 고비를 말하지 말라.
고비 인생과 홉스굴 인생이 있는 것처럼 내가 고비를 좋아하는 것은 나만의 주관적인 판단이며 내 삶의 방식과 통하는 어떤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몽골에서 가장 좋은 차라 했다. 한국에서 방금 수입한 중고 버스다. 불과 한 달 전에 한국에서 왔다니 그건 분명 좋은 것?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 한 달 전에 들어왔으므로 몽골의 비포장 길을 달린 거리가 짧으니 조금 덜 망가진 버스라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이미 십년은 넘어 보이는 중고버스다. 그러나 그것도 좋다.
사막과 광야를 달리는 차는 보통 푸르공이라는 소련제 지프차여야 한다. 그러나 어떠랴. 버스든 푸르공이든 달릴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것이다. 광야는 어떤 차도 가리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달라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을 뿐. 광야와 고비사막에 적합한 차가 어디 따로 있을 것인가? 고정관념이다. 선입관이다. 소련제 푸르공 지프차도 좋고, 10년이 넘은 한국제 중고 버스도 좋다. 사막을 달릴 수만 있다면 말이다. 아니다. 사막을 달리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차는 고비에서 쓰임 받을 수 있다. 고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고비를 두고 이리저리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이다. 우리가 탄 한국제 중고버스는 마치 우리 일행의 생애처럼 늙었고 조금은 걱정이 되었으며, 혹시 하는 두려움 때문에 뒤에 봉고차 하나를 달고 떠나야 했다. 미안하다 중고 버스여! 너를 너무 무시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속으로 웃는다.
고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괜히 고비 걱정을 한다. 아니 고비가 아니라 우리자신에 대한 걱정이다. 출발하기도 전부터 필자는 버스가 좋아야 하며 에어컨이랑 마이크 성능도 좋아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특히 버스기사는 중요하다며 몇 번이나 태산 같은 걱정을 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맞아야 고비를 가는 줄 알았다. 고비가 힘들다 했음으로 우리는 출발하기도 전부터 두려워하고 있었다.
고비를 가기도 전에 우리는 고비를 맞이한다. 고비와 관계없는 인생이 언제부터인지 고비가 되었다. 고비를 넘어 고비를 가며 나는 그렇게 삶을 생각하고 인생의 어리석음을 고백한다.
물론 차이는 존재한다. 무조건 세상살이를 그렇게 몰아가서도 안될 일이다. 우리가 탄 버스는 얼마 전 포장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 소련제 푸르공 지프차는 가히 비포장의 황제. 고비도 포장을 하면 한국제 중고버스도 달릴 수 있다. 우리는 버스와 푸르공 모두를 섭렵했다. 고속도로에서는 버스로, 다시 비포장 광야 길에서는 푸르공으로 달리면 될 일이었다.
고비는 그래서 인생이다. 고비에 가면 인생이 보이고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기 원한다면 고비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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