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온 나그네, 네팔로 돌아간 순례자>
선교는 나그네를 순례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목적지가 없던 나그네들에게 본향과 목적을 갖고 살아가는 인생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선교인 것이다. 내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비롯해 이주민들을 목회하면서 느낀 가장 큰 보람은 그것이었다. 나그네로 찾아온 이들이 복음을 접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었다.
이번 네팔 방문 중 나는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다 돌아간 이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사람들이 네팔 선교와 세계선교에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로 쓰임 받게 되는 지를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이 네팔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카트만두에서 밥퍼 사역을 하고 있는 팀세나 부원장이었다. 지난 5월 이미 네팔에 가 있던 우리 교회 영선 자매가 공항에 마중 나오면서 팀세나 부원장과 함께 우리를 맞이했던 것이다. 팀세나 부원장은 유창한 한국말을 하였다. 조금도 어색함이 없는 그의 한국말 솜씨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디서 한국말을 배웠느냐고 물으니 그는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로 살았던 경험이 있다 했다. 그랬다. 그가 바로 네팔인 노동자로 한국에 온 사람이었던 것이다. 한국에 온 팀세나 부원장은 어느 날부터인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그의 삶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의 삶과 인생에 새로운 비전이 생긴 것이다. 한국에서 네팔로 돌아온 그는 곧바로 다일공동체가 세운 카트만두의 밥퍼 사역과 학교를 운영하는 지부의 부원장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네팔에서의 여정은 4박5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영선 자매와 팀세나 부원장 부부의 사역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결국 네팔인 부원장의 협력이 없이 한국인들로만은 그곳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헌신은 밥퍼 사역에 있어 결정적이었다. 그는 탁월한 능력과 네팔인으로서 자신의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밥버 사역을 돌보고 있었다. 그가 외국인 노동자로서 한국을 경험하고 특히 한국에서 교회에 나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것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은총임에 틀림없다.
그의 도움이 없이는 밥퍼사역도 선교도 쉽지 않다는 현지 한국인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네팔의 밥퍼 사역과 학교를 운영하는 일에 있어 이제 팀세나 부원장의 역할은 결정적인 것이다. 팀세나 라는 한 사람의 네팔 노동자가 한국에 와서 복음을 듣고 삶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한 영혼의 문제를 넘어 네팔 선교와 민족 전체에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음이다.
네팔 여행 중 만난 잊을 수 없는 또 한사람은 엘피 사장이다. 그는 제이빌(J.Vill)이라는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가 묶고 있던 호텔도 그 여행사를 통해 구한 것이라 들었다. 그는 매우 예의바르고 세련된 네팔인이었다. 영선 자매를 통해 미리 얻은 정보로는 그도 역시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 간 외국인 노동자 출신이라고 한다. 그 또한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온 유해근 목사입니다. 내가 듣기로는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요? 혹시 교회를 다닌 적은 없나요?"
나는 엘피 사장을 만나자 마자 그렇게 묻고 이야기를 건넸다. 갑자기 그에게서 무언가 듣고 싶은 것이 있어서일까? 어떤 예감 때문이었다.
"예, 나는 한국에서 처음 교회에 나갔어요. 내가 나간 교회는 구로동에 있던 교회입니다. 저녁이면 닭고기를 튀겨 주던 교회였지요. 목사님이 그 교회를 아시나요?"
나는 깜짝 놀랐다. 그렇다. 그 예감이 맞았다. 그는 내가 목회하던 그 교회를 나온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느낀 점, 그가 교회에 나가면서 조금씩 기독교인으로 변화되어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한국에서 교회에 나가 기독교인이 되기까지는 중요한 계기가 있었지요. 처음부터 기독교인이 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는 한국 사람들이 우리 네팔 사람들을 병원에 데리고 가고 혹은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의 일처럼 해결해 주는 것이었어요. 진심으로 우러나와 우리를 대접하는 모습 속에서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지요. 힌두교만 믿던 우리에게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매우 충격적이었어요. 가장 좋은 전도는 사랑입니다. 처음부터 신앙을 가지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삶으로 보여주면 우리도 조금씩 변화되어 가면서 복음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죠. 말이 아니라 사랑이 삶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것이지요. 나는 그렇게 해서 기독교인이 되었답니다."
그의 간증은 나에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내게 앞으로 네팔에서 선교하려 한다면 그런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한국에서 보던 그 방법대로 선교하는 것이 네팔을 바꾸는 힘이라고 했다. 내가 처음 외국인 노동자 선교를 시작했던 그 교회를 출석했다는 엘피 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내 삶에 대한 한편의 보상이라도 받은 것 같은 기쁨이었다. 그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마치 나와 짜고 입을 맞춘 것처럼 조금도 가감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네팔에서 온 나그네를 순례자로 만드는 것이 선교다. 네팔 선교는 한국에서 한다. 오래전부터 나는 그렇게 네팔 선교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네팔 선교를 했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네팔에 온 것이었다.
현재 네팔에서 한국에 오는 네팔 노동자는 일 년에 9천명에서 만 여명에 이를 정도로 많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는 네팔 노동자들은 4만 명을 넘는다. 그렇게 왔다가 돌아간 네팔 사람들은 네팔 곳곳에서사업을 하거나 그 지역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팀세나 부원장도, 엘피 사장도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을 통하지 않고 한국 사람들은 네팔에서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한국인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세계화와 다문화의 의미를 깊이 깨닫는 네팔 여행이었다. 나 자신이 한국에서 하던 일의 중요성을 확인하니 얼마나 기쁘던지... 다시 힘을 얻는다. 한국에 돌아가면 또 만나게 될 네팔인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다시 네팔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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