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닥터! 나의 하나님
하나님이 무슨 종이조각을 들고 물으셨다. ‘은경아... 뭐 할래?’
그 곳에 감기, 두통에서부터 피부병, 재생불량성 빈혈, 천식, 결핵, 공다공증, 궤양, 발진 트라코마, 탈골, 천연두, 중추신경계 기형… 등등이 빼곡이 써 있었다.
오우, 마이 갓~ 하나님도 너무 치사하시다. 여기서 나더러 고르라니…
시간을 좀 달라했다. 기도해 보겠다고.
무슨 소리냐고?
무슨 소리긴… 고은경이 하나님에게 또 까불어 댄 것이다.
10여년 전.
글줄께나 쓴다고 연일 술이었다. 잘 써진다고 한 잔, 안 된다고 한 잔… 누가 좋은 작품이 나왔다고 한 잔... 나에게 글과 술은 불가결한 문제였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저지르는 나도 문제였지만 주변이 많이 피폐해졌다. 머리꼭지까지 취함에도 불구하고 집까지 잘 찾아가는 나를 대견히 여기면서 집앞 놀이터 그네에 앉았다. 달 둥글게 뜬 밤이었다. 뜬금없이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저 이대로는 안되겠지요? 이대로는 절대 술을 끊을 수 없으니 이제는... 이제는 하나님이 좀 어떻게 해 주세요...’
기가 막히게도 나의 기도를 잘 들어주시는 하나님께선 바로 두어 달 후, 떠억하니 위암이라는 병을 주신다. 놀래지도 않았다. 뭐, 하나님의 처방이 그러니 꼼짝없이 시인할 수 밖에... 살려달라고 5년을 기도하고 5년을 금주하고 완치판정을 받고...
아,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었던가... 다시 포도주 한 잔으로 시작해 슬슬 땡기는 술맛.
그런데 사실 그렇다. 술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 그것을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이 망가지니 문제다. 한 잔으로 분위기를 이어가는 독한 사람을 보았다. 한 잔을 홀짝홀짝 마시며 좌중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라면 어찌 아니 좋으랴.
그에 비해 나같은 경우는 한 잔이 두 잔을 부르고 아 술은 홀수로 마셔야한다고 세 잔을 마시고... 이왕 마신 것 적게 먹고 야단 맞으나(남편 오집사에게) 많이 맞고 야단 맞으나 진배 없다는 두툼한 뱃장이 또아리를 틀고 있으니... 게다고 그 다음날 아침은 자괴감으로 무척 우울해졌다.
오십을 넘기고... 암에서 탈출한 (이것은 순수한 하나님의 작품) 이 후...
나는 또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마실 땐 좋지만 이건 아니었다. 정말 이건 아니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 오려면 하나님의 긴급호출이 불가결하다.
기도를 했다.
‘하나님, 말이죠. 제가요... 우울해지고 술 마시고를 반복하는데 이거 어떡할까요? 근데요... 저... 저번때처럼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병 말구요. 뭐 딴 거 없을까요?’
라고 나름 진지하지만 일반적으로 보기엔 좀 얄팍한 기도를 드렸다.
물으신 게 그것이다. 그래서... 답변했다.
' 생명과는 관계없지만 좀 조심해야 하는거요...' 라고 말씀드린 며칠 후,
하나님은 속사포로 내게 40도가 넘는 발열을 주시고 방열 원인을 현대과학으로 밝히는 도중... 아아아... 당뇨를 주신 것이다. 뭐, 또 다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단, 술을 절대 마셔서는 안되고 달콤한 케익이나 부드러운 아이스크림과는 이젠 빠이빠이다. 세상의 맛있는 음식과는 이제 좀 담을 쌓아야 하고... 이제는 입 속에서 껄끄러운 음식을 먹어야 하는...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이 전부였던 내게 운동요법도 주어졌다.
하나님, 너무 웃기신다. 나는 지금 속으로 크크크 웃고 있다. 아니 나만큼 하나님의 응답을 익스프레스로 받는 인간이 또 있을까...
남이 들으면 질투할 일이건만 나는 또 다시 크게 자랑하련다.
헤이~ 미스터 닥터... 하나님... 정말 땡큐랍니다.
(지금 학교교실 안... 연구실에선 선생님들이 맛있는 떡볶이를 시켜먹고 있습니다. 저는 가면 안 되지요. 떡볶이의 탄수화물 함량이 넘 많아서... 빈 교실에서 하나님과 대화나 할 수 밖에요~.)
- 고은경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