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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몽골학교 건축의 배경과 의미 (2014.11.28) > 우리학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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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몽골학교 건축의 배경과 의미 (201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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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7-21 18:18 조회10,0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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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재한몽골학교의 설립 배경과 건축 현황
 
  1. 한국과 몽골의 역사적 관계

한국과 몽골은 여러 면에서 공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면에서부터 인류학적이고 언어학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몽골은 매우 가깝고 밀접한 관계 속에 있어 왔다.  한국의 고대역사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민족은 3~4천 년 전, 몽골지역 어디선가 살다가 남쪽으로 이동하여 중국 동북부 지방을 거쳐서, 현재의 한반도와 한반도주변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증거로 몽골반점 우랄알타이어계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 그 외에도 다양한 문화적 공통점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공통점을 가진 두 나라가 본격적으로 교류했던 시기는 고려시대였는데, 이는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활발하게 교류했던 시기로서, 원나라가 멸망까지 약 100여 년 간 많은 문화교류가 있었다.
군사적으로도 1219년에 한민족과 몽골민족이 동맹을 맺게 되었는데, 두 나라의 군대가 연합하여 한반도를 공격한 키단(Kidan)국을 격퇴하였으며, 그 후 동맹 동의서에 "두 나라가 영원히 형제가 되어 자손만대로 오늘을 잊지 않도록 한다." 라는 선언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후 몽골의 사신 저고여의 암살사건으로 몽골의 살리타이 장군이 고종 18년(1231)에 고려를 침략하였고, 이후 1367년 원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약 137년 동안 고려를 지배하게 됨으로서, 양국은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고려사 제1권 "을미 십사 년에 사내아이 열 명을 거란에 보내어 그들의 언어를 배우게 하였다."는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천 년 전부터 몽골과 한국이 상호 유학생을 교환했던 것으로 나와 있으며, 고려사 31권 "을미 21년, 원이 몽골족 교수를 파견하여 왔다."는 기록에서도 상호 간에 인적교류가 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몽골어가 유행하였는데, 당시 몽골어 구사능력을 지니면 얼마든지 신분을 뛰어넘어 출세에까지 이를 수 있었기에, 몽골어를 공부하기 위해 몽골어 선생들을 초빙하기도 하였으며, 몽골책의 번역서를 펴냈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고려에는 몽골어뿐 아니라 몽골 사람들의 머리모양, 화장법, 패션 스타일이 유행하는 '몽골풍'이 있었고, 반면 몽골에는 고려의 유행이나 문물들을 모방하는 '고려양'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고려시대에 몽골은 여러 가지 형태로 고려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그 흔적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는데, 연구자 김기선에 따르면 제주도에 사는 한국인들은 200개도 넘는 몽골어 단어를 현재도 사용하고 있으며, 몽골의 동쪽에 있는 헨티(Hentii), 도르노드(Dornod), 수흐바타르(Sukhbaatar) 아이막(道)에는 한국의 이주 설화를 비롯해 고려 여인들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식의 무덤과 성곽 등의 유적이 산재해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1274년 충렬왕 때부터 1349년 공민왕에 이르기까지 거의 100년 동안 5명의 고려왕이 몽골의 왕족으로부터 8명의 아내를 얻어서 공식적인 왕후로 삼았던 역사적 기록이 있다. 하지만 원나라가 멸망한 후 명나라 시대가 시작되었고 고려에 이어 조선이 건국됨으로서,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가 성립된 이후 양국 관계는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복잡하고 변화된 역사적 맥락 속에 양국 관계가 약 600년 가까이 단절되었던 시기도 있었다. 
청나라의 지배를 200년 동안 받아온 몽골은 1911년 신해혁명을 통해 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오래 가지 않아 중국이 침략했으며, 우여곡절 끝에 1921년 7월 11일 외몽골이 소련군의 도움으로 독립을 하게 되었고, 1924년 11월 26일에 몽골인민공화국을 선포하여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런 냉전시기에 한국과 몽골은 국제 스포츠 기구를 통해 간혹 대화를 할 수 있을 뿐이었고, 학술적 자료도 외국을 통해 입수하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이 시기 한국의 독립운동가 이태준선생이 1912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남경에서 ‘기독회’ 의원으로 의술을 펼치다가 몽골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수도인 후레(Хүрээ)에 ‘동의의국’이란 병원을 열어 몽골 국왕(Богд гэгээнЖавзандамба)의 주치의가 되어 몽골의 위생계몽활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몽골정부는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1919년에 당시 몽골 최고훈장이 주어졌으며, 2000년 3월 울란바타르 자이승산 인근에 2천여 평의 기념공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몽골에서 설립한 최초의 한국병원인 연세친선병원 또한 이태준선생의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 개설하였다.
이후 양국은 1978년 세계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권대회를 통한 스포츠 교류와 1988년 한국의 서울 올림픽 개최를 통해 서서히 교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당시 사회주의 강한 이념적 차이 때문에 한국은 몽골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몽골은 북한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한국인과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조금씩 알아왔는데, 이는 탈냉전시기에 와서 한국과의 교류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향후 한국과의 수교 당시 북한 유학파들의 큰 역할이 하였는데, 이들은 한국의 언어, 문화적 공통성을 아는 유일한 전문가들이기도 하였다. 그 예로 초대 주한 몽골 대사 우르진룬데브와, 라와가 영사, 주북한 대사 럼버 등을 들 수 있다.
이후 한국과 몽골 양국은 1990년 3월 26일에 공식 외교를 수립하였으며, 같은 해 6월 18일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 몽골 주재 한국대사관을 먼저 개설하고, 이듬해 2월 1일에 한국주재 몽골대사관을 서울 한남동에 개설하였다.
양국 국가수반들의 교류는 1991년 10월 오치르바트 몽골대통령의 방한을 시작으로, 1999년 5월 김대중 대통령의 방한, 2001년 2월 바가반디 몽골대통령 방한, 2006년 5월 노무현 대통령 방몽, 2007년 5월 엥흐바야르 대통령의 방한, 2011년 8월 이명박 대통령 방몽 등의 교류가 있어왔다.
이제 한국은 몽골의 제4대 교역국가, 제3대 투자국가가 되었으며, 현재 한국에는 약 3만 여 명의 몽골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몽골에도 약 3천여 명의 한국 교민이 생활하고 있다. 
지금 몽골은 한국과 협력관계를 중요한 외교적 목표로 설정하였고, 한국의 경제발전을 몽골 경제발전의 모델로 삼고 있다. 또한 한반도의 안정은 곧 몽골의 안보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한국의 대북평화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있으며, 한국을 동북아시아의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3만에 가까운 몽골 국민이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총인구의 1%를 상회하는 수치로, 해외에 나가 있는 몽골인들 중에 제일 많은 몽골인들이 한국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동북아 국가로서 몽골의 정치적인 중요성과 협력 잠재력이 크다는 점을 중시하여 몽골의 개혁과 개방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있으며, 유무상의 경제 원조를 매년 제공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한국은 몽골이 세계 4대 에너지 보유국이라는 점과 몽골 경제 발전에 참여할 인적, 기술적 자원의 수출시장이라는 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한국과 몽골은 경제, 외교, 문화, 사회 등 여러 방면에서 점점 더 긴밀한 협력이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특히 몽골의 풍부한 자연자원과 한국의 선진기술의 성공적인 결합을 위하여, 양국 관계는 점점 더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한국과 몽골은 경제의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돈독히 해나갈 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 문제에 있어서 양국의 공동이해에 입각한 안보적 협조를 강화하며, 양국 국민 간의 교류를 확대하고, 국제무대에서 협력을 강화해 나가는 등, 양국 관계의 성공적인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2. 재한몽골학교의 설립 배경과 현황

1)재한몽골학교의 설립배경
  1986아시안게임, 1988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전세계에 대한민국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고 특히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으로부터 노동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그 중 몽골인 근로자들도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유목국가인 몽골의 특성상 대다수의 몽골인들이 아이들과 가족을 동반하여 국내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교육법에는 외국인자녀가 국내 일반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으므로 방치되어 있는 몽골아동들을 위해 1999년 학교의 문을 열게 되었으며 이로써 재한몽골학교는 해외에 있는 유일한 몽골학교로 알려지게 되었다.

2)재한몽골학교의 현황
  1999년 12월 9일 8명의 아이들로 시작되어 2004년 12월 서울시 교육청으로부터 외국인학교로 설립승인을 받은 후 2005년 2월 외국인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이듬해 몽골교육부로부터도 인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국내 유일한 몽골학교인 본교는 전국각지에서 학생들이 입학하다보니 기숙사가 절실하여 2005년 남녀 기숙사도 마련하게 되었다.
수 년 동안 새로운 소외계층인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교육과 복지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2006년도에는 국회한몽친선협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고 청소년위원회로부터 청소년푸른성장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학교설립자인 유해근 이사장은 2007년 몽골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친선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개교 이래 지금까지 몽골대통령 영부인을 비롯한 울란바타르시장, 외무부 장관, 교육부 차관 등등 몽골 지도층 인사들이 한국에 오면 반드시 방문하는 곳이 본교이기도 하다. 민간외교의 첨병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본교에 대하여 2008년 12월 서울시의회에서는 몽골학교 부지예산을 편성하였고 드디어 2013년 10월 본교는 건축허가를 받아 현재 건축을 준비 중이다.
현재 본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총 83명의 몽골인 학생이 재학 중이며 몽골인과 한국인 기타 국적의 교사 35명이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나. 재한몽골학교의 건축계획

  1. 건축허가 과정

2008.12.11  서울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학교부지매입 예산 편성
2009.06.18  도시관리계획 열람공고
2009.10.12  서울시교육청 교육환경평가
2010.01.28  서울시 도시계획실시 계획인가
2010.11.10  현 부지 서울시로 소유권 등기 완료
2011.01.10  서울시에 학교사업계획서 제출
2012.06.27  토지 원소유주에 대한  행정소송 승소 
2013.10.04  건축허가 및 산지전용허가

  2. 건축 개요
 
대지위치 :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 401-17번지
대지면적 : 3,093.00m² (937.27평)
사업시행자 : 서울특별시(이전부지 임대), 사단법인 나섬공동체(건축)
총건축비 : 40억원
착공 및 준공예정일 : 2013년 10월 ~2014년 8월
학생수용 계획 : 정원 300명(초등 180명, 중등 60명, 고등 60명)
건물 연면적 : 2,940m² (890.91평)
층별개요 : 지하 1층 909.07m² (275.48)  - 강당, 주방, 식당, 전기실 
          지상 1층 649.59 (196.85) - 교무실, 도서실, 음악실, 행정실, 이사장실
          지상 2층 690.67 (209.29) - 교실 6개, 과학실
          지상 3층 690.67 (209.29) - 교실 6개, 컴퓨터실
현금자산 : 12억원
향후 후원 목표금액 : 28억원 
 

다. 재한몽골학교 건축의 의미

  1. 국익의 관점

한국과 몽골을 이어주는 민간외교와 경제적 의미에서 본교는 중요한 다리역할을 할 수 있다. 몽골은 향후 우리 외교와 경제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나라가 될 것이다. 풍부한 지하자원과 통일과정에서의 몽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본교는 그런 면에서 우리의 외교와 경제발전을 위한 가교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도 본교를 통하여 몽골 정부 지도층과 많은 교류가 이루어졌다. 민간기관으로서 몽골정부나 지도자들을 수시로 접촉할 수 있는 감성외교의 통로가 본교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특히 몽골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지하자원의 개발 등 매우 중요한 국가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교는 그 가치를 충분히 갖고 있으며 우리 국가와 기업 모두에게 중요한 자산이라 자부한다.
 
  2. 사회적 관점

우리는 우리 사회의 소외된 약자들을 도움으로 잃어버린 도덕성과 성숙함을 회복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진입하면서 국제적 기여도와 사회적 도덕성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갖고 있다. 재한몽골학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각지대의 이주민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이다. 이제는 이 아이들을 사랑으로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사회적 책임이며 선진국 국민으로서 실천해야할 당연한 사명이다.
   

  3. 선교적 관점

몽골선교와 세계선교의 징검다리가 되게 한다. 우리는 전세계에 2만 5천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강국이다. 그러한 시점에 재한몽골학교는 몽골선교와 세계선교의 지렛대요 모판이 될 수 있는 학교다. 본교를 통하여 몽골 학생들은 기독교 교육을 바탕으로 몽골교육은 물론 세계화 교육을 받아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춘 인재로 자라나고 있다. 본교에서 배출된 아이들은 몽골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복음의 통로로서 큰 역할을 감당할 것임에 틀림없다.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몽골인 자녀들을 통한 선교에 관심을 갖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선교적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그러한 선교적 의미에 대한 사례를 갖고 있다. 본교는 한국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며 선교적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우리 곁의 몽골 아동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교육 받고 신앙인으로서 잘 자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연락처 : 02-3437-7078, 010-3069-2981
계좌번호 :  신한은행 110-067-984415 (재한몽골자녀학교)
            국민은행 917701-01-085978(재한몽골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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