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나눔 몽골 기행 (재한몽골학교 운영이사 백 우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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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7-21 17:37 조회3,56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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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나눔 몽골 기행
재한몽골학교 운영이사 백 우 현
1. 울란바타르에서 홉스골호수로 가는 길
16일 밤 8시경에 출발한 비행기는 3시간여를 날아 11시20분경에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Ulaanbaatar : ‘붉은 영웅’이라는 뜻) 칭기즈공항에 도착하였다. 짐을 찾고 간단한 입국 수속을 밟은 뒤 관광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를 달려 시내 호텔에 도착, 여장을 풀었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울란바타르의 밤은 너무나 조용히 깊은 잠에 빠져있는 듯 적막감마저 감돈다.
17일 몽골에서의 첫 아침은 마치 시골 고향에 온 듯한 착각 속에서 상쾌한 기분으로 출발하였다.
우리 일행은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국립교육대학교로 향했다. 그동안 몽골의 국익신장과 한․몽 양국의 친선 도모, 몽골 근로자들의 선교 및 후생 복리에 공이 크셨던 재한몽골문화원 김건철 이사장님께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한단다. 몽골의 유일한 교사 양성기관인 국립교육대학은 시설이 허술하고 정돈이 안 된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행사를 준비하는 직원들이나 수여식에 임하는 총장, 부총장을 비롯한 모든 보직 교수들의 자세가 예의바르고 정중하며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학위 수여식을 마치고 칭기스 호텔에서 울란바타르 시장님을 접견하고 여러 가지 양국간의 현안 문제를 협의하였다. 시장님은 재한몽골문화원과 재한몽골학교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으며 우리 모두에게 계속적인 지원과 협조를 진지하게 부탁하신다.
한국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어제 밤에 도착했던 칭기즈칸공항으로 갔다. 국제공항이라고 해야 비행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 시골의 한적한 비행장 같다.
우리들은 41인승 프로펠라 비행기를 타고 홉스골아이막(주)의 수도 머렁이라는 도시의 작은 공항에 내렸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몽골 초원은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과 어우러져 드넓게 펼쳐져 있고 군데군데 목장들이 있어 말이나 양떼들이 하얀 게르(Ger : 몽골 유목민의 둥근 천막형태의 주택)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지평선과 맞닿은 끝없는 평원을 보면서 좁은 공간에서 아웅다웅하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생각해 본다.
비행기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추럭을 타고 국립공원인 홉스골 호수까지 2시간을 달렸다. 온 몸이 춤을 추듯 출렁거리면서 포장된 길이 없고 아무데나 달리면 되는 광활한 몽골 초원! 길옆에 핀 이름모를 노란 꽃들이 초원의 정취를 더해준다. 가끔 길을 건너는 소나 양떼들의 한가한 모습이 유목(nomad)생활의 단편을 보여주는 듯 했다.
한 참을 달리다 보니 녹색 초원 저 멀리 짙푸른 호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과 호수와 초원이 어우러지는 풍경은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로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위대하신 작품이 아니겠는가?
우리들은 차에서 내려 조그만 배를 탔다. 잔잔한 물살을 가르면서 달리는 호수의 양 옆엔 아름다운 그림들이 꿈처럼 지나간다. 나는 평생 이토록 한적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비경을 본 일이 없다. 꿈꾸듯 비경에 취해있던 나는 온몸에 축적된 온갖 노폐물을 토해내듯 숨을 깊고 길게 내쉬어본다.
1시간 30분을 달리니 호숫가에 여기 저기 그림 같은 캠프촌이 나타난다. 목조 건물과 게르가 잘 어우러져 거대한 침엽수 사이로 조용히 잠자듯 아름답다. 드디어 우리들이 머무를 줄친(Juulchin)이라는 캠프촌에 도착했다. 캠프로 향하는 길가엔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과 야크들이 우리 일행을 힐긋힐긋 쳐다본다.
이 곳 캠프장은 중앙의 식당과 두서너 개의 집회실을 제외하곤 모두 게르로 이루어져 있다. 방 배치를 받고 그림에서만 보아왔던 게르에 들어갔다. 여섯 평 크기의 방엔 장작을 때는 난로를 가운데 두고 2개의 침대가 깔끔하게 놓여있고 조그만 탁자와 2개의 의자가 제법 방의 분위기를 아담하게 해준다.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워서 몽골인들의 애환을 그려보며 너무나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무척 신기하기도하고 재미도 있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호숫가로 나왔다. 잔잔한 물가에 앉아 아름드리 나무뿌리가 침엽수 사이로 여기저기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태고적 신비감마저 느껴본다. 이 세상에 이토록 조용하고 깨끗한 곳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호숫가를 거닐면서 호수에 비춰진 붉게 타는 태양을 본다. 일몰이다. 북극지방(?)의 일몰은 황홀하다 못해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리고 그 일몰은 서서히 그리고 장엄하게 진행된다. 문득 시계를 보았다. 11시 반이다. 정말 한 밤중인데 이 곳은 아직 태양이 지고 있다. 백야현상이란다.
이 홉스골 호수는 울란바타르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3300㎢의 아름다운 호수로 지구물의 1%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호수란다, 수정 같은 호수 주위로 숲이 우거진 산과 풀로 뒤덮인 초원, 간간히 보이는 게르와 말떼들이 이 호수의 정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2. 승마 트래킹과 캠프화이어
둘째 날 18일 아침은 늦잠을 자기도 했지만 날씨가 흐려서 일출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연중 비오는 날이 15-20일 정도라는데 오늘따라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런데 몽골인들은 비가 오는 것을 커다란 축복으로 생각하고 웬만한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비를 가지고 온 귀한 손님이라고 해서 정중한 대접을 한단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몽골인들의 생활을 체험하는 날이다. 그 중에서도 말을 타고 호숫가를 달리는 승마트래킹이 인기 짱이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말위에 올라 조심스럽게 앉아 그저 말이 가는 데로 따라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출발이었다. 우리 일행 중 두 분이 낙마를 했다 말이 놀라서 벌떡 일어서니까 말위의 왕초보들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조심스럽게 1시간 반을 달려서(?) 순록유목과 전통생활을 하는 차틍 소수부족마을을 찾았다. 침엽수림 속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그들은 십 수마리의 순록들이 누워서 쉬고 있는 옆에 자리를 펴놓고 각종 민속공예품들을 팔고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조용한 눈빛에 그들의 순박한 마음이 잔잔하게 배어나온다.
오는 길엔 제법 비가 많이 내렸다. 어느 정도 몸의 균형이 잡히기도 하고 자신감도 생기니까 빨리 달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용기를 내어 말허리를 두발로 차면서 “추추” “추추”하고 힘차게 구령을 붙였다. 말이 뛴다 내 몸은 위아래로 출렁이고 엉덩이는 말 잔등에서 철석철석 엉덩방아를 찧는다. 엉덩이가 아프고 정신이 없어도 기분은 좋았다. 차츰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생기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까 호수도 보이고 초원의 저 끝자락도 보이면서 여러 가지 생각도 해본다.
지금으로부터 800년전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족들은 말을 타고 대륙을 질풍노도와 같이 달리면서 30개국을 정복하여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역사는 잔인하다. 그 후 중국의 속국이 되었다가 소련의 도움으로 1921년 독립을 하였고, 독립이후 70년간 공산 정권이 지배하다가 1992년 민주화가 되었단다.
몽골은 1인당 GNP가 600불 정도의 가난 속에서 허덕이는 후진국가로 몰락, 이제야 새로운 도약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나라이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도 전기, 수도, 도로 등 기본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고 시민들의 질서의식이나 공직자들의 봉사정신도 미약한 후진도시이다.
말을 타고 호숫가를 달리면서 역사의 아이러니에 잠겨본다.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말은 계속 달렸고. 어느새 제1착으로 캠프에 도착하였다. 말에서 내리니 양다리와 양팔이 뻐근하고 아프다. 그래도 오늘은 말을 타고 호숫가를 달렸다는 이유만으로도 흐뭇하기만 한 하루였다.
늘 바쁘게 생활하던 우리에게 비 오는 날의 오후는 우리에게 절호의 휴식시간이다. 우리가 빗소리를 들으면서 낮잠을 자는 동안, 한 편에서는 양을 잡아 몽골의 전통 요리를 만들었다. 순하기만 한 양이 소리하나 지르지 않고 조용히 죽어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연민의 정마저 느꼈단다.
모처럼 저녁식탁은 양고기와 포도주로 풍성했고 함께 오신 일행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끝없는 대화로 화목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저녁시간엔 몽골 청년 다섯 명이 출연하는 몽골 전통 음악과 춤 등을 관람했다. 우리나라 가야금 같은 21현의 악기도 있고, 2줄의 해금 같은 악기도 있었으며 대금 같은 악기도 있었지만 그 음색은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 음과 율동 속엔 몽골인들의 애환이 진하게 배어 있으며 오음음계로 연주되는 애절한 음정엔 우리 음악의 한(恨한) 같은 정서가 느껴지기도 한다.
11시 반경 해가 질 무렵 우리들은 호숫가에서 둘러앉아 모닥불 놀이를 했다. 적막한 호숫가에서 모닥불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손뼉을 치며 캠프 송을 부르고, 돌아가면서 자기를 소개하며 독창도 하면서 홉스골의 밤을 축복했다.
밤이 깊어져 삼삼오오 작을 지어 숙소로 발길을 옮긴다. 북쪽이라 하늘이 더 가까워서인지 밤하늘이 황홀하다. 북두칠성과 가시오페아가 반짝이고 은하수가 허옇게 흐르는 사이로 별똥별이 정적을 깬다. 그리고 그 황홀한 하늘이 호수에도 잠긴다. 곧 쏟아질 것 같은 명멸하는 별들의 축제 속에 대교향시가 들리는 듯 착각에 빠져본다. 북극(?)의 짧은 밤은 우리 모두의 잠을 앗아간 추억의 밤이었다.
3. 민간외교의 현장
19일 낮 울란바타르로 돌아오는 길은 마치 우리들을 유목민처럼 느껴지게 한 고달픈 여정이었다. 덜컹이는 추럭을 타고 초원을 달리고 나무 한그루 없는 들판에서 몽고식 만두로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시골의 버스 정류장 같은 비행장에서 프로펠라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난다. 물론 힘이 들고 고생이 되기도 하였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귀한 체험들이 먼 훗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될 보람 있는 여정이라고 생각해 본다.
우여곡절 끝에 울란바타르에 도착 영빈관으로 갔다. 우리일행과 몽골의 수상 내외분, 울란바타르 시장, 대통령 비서실장 내외분, 교육부 차관 등 몽골의 유명 인사들과 고위층 공무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공식적인 순서를 진행하고 라운드테이블에 둘러 앉아 서툰 영어로 대화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재한몽골문화원과 재한몽골학교의 활동 상황 및 지난 7월9일 서울에서 열린 “나담 축제”(매년 열리는 몽골의 독립축제)등이 빔프로젝트로 상영되어 몽골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몽골은 한반도의 약 7.4배의 면적에 석유, 석탄, 구리 등 풉질 좋은 지하자원이 풍부하며(세계 10대 자원국) 인구는 약 250만명, 할흐족, 카자흐족 등 17개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평온한 나라이다. 70년간의 공산정권으로 인해 근대화에서 낙오되어 1인당 국민소득이 600불 정도의 후진국이지만 무한한 잠재력과 발전가능성을 가진 떠오르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몽골을 지배했던 공산정권의 잔재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도약과 국가적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칭기즈칸의 동상을 세우고 수도이름을 울란바타르(공산정권 때 지은 이름)에서 칭기즈칸으로 바꾸자는 논의도 하면서, 독립기념일에 거행하는 “나담 축제”도 거창하고 화려하게 하고 국제간의 교류도 확대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단다.
우리나라도 정부는 물론 기업이나 민간단체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상호 협력하고 교류를 확대해야 할 중요한 시기이며 몽골이 우리에게 기회의 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그날 밤은 울란바타르시 교외의 한적한 휴양지에 위치한 몽골리아호텔에 짐을 풀었다. 마치 중국의 자금성을 연상케 하는 구조와 게르식 방으로 연결된 몽골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란다. 모처럼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면서 서울에서의 우리들 생활이 너무 호화스러웠다는 생각을 해본다.
4. 사랑의 실천
20일, 마지막 날은 울란바타르에서 약75km 떨어진 테렐지국립공원에서 하루를 보냈다. 테렐지 공원은 기암괴석과 테렐지강의 비경, 야생화가 어우러진 환상적인 분위기다. 모처럼 한국식당에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먹고 말을 타고 초원을 달려 본다. 비록 말들이 잘 달리지는 않지만 드넓은 초원의 상큼한 바람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말발굽 소리는 몽골에서의 마지막을 더욱 아쉽게 한다.
그날 텔레지공원으로 가던 날 공교롭게도 재한몽골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오동추(여)선생님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받고 문상을 가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함께 살면서 맺어진 인연과 정 때문인지 모두들 정중한 자세로 문상을 했다. 나에겐 몽골의 장례문화를 견학한 좋은 기회이기도 하였지만 목사님을 비롯한 몽골학교 관계자들이 유족들과 서로 부등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위로하고 슬퍼하는 모습에서 국경을 초월한 인간애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현장임을 확인했다.
그날 마지막 식사는 서라벌이라고 하는 한국식당에서 돼지고기 볶음으로 맛있게 했다.
식사를 하면서 유해근 목사님의 사회로 몽골에서의 일정과 모든 프로그램을 평가하고 개인적인 소감을 피력하는 간담회 같은 자리였다. 외국인 선교회 목사님들, 몽골문화원 이사님들 몽골학교 이사님과 후원자들 모두가 보람 있고 유익한 여행이었음을 토로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힘을 모아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보자는 결의에 찬 대화였다.
특히 몽골문화원 김현용 장로님의 도움으로 심장수술을 하여 새 생명을 얻게 된 엑실렝(여, 3세)과 자궁외 임신으로 사경을 헤메던 그이 어머니 침계씨가 그의 남편과 함께 참석하여 환담을 나누었다.
엑실렝양은 친손녀인양 김장로님의 품에 안겨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연신 미소를 짖고 있다. 마치 천사 같다. 그 아이의 부모도 김장로님을 친부모로 생각하면서 정을 나누는 모습
을 보면서 하나님은 한국인만 사랑하시는 한국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피부색이나 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일류를 사랑하시는 참으로 크신 하나님이라고 생각해 본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하다가 귀국한 몽골인들과 자기들의 자녀를 재한몽골학교에 두고 강제로 출국당한 안타까운 부모 등 10여명이 모여들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만남의 정’을 나눈다.
5. 선교의 전략
그동안 외국인 선교회를 주관해 오신 목사님들은 울란바타르 시내를 다니시면서 여기저기서 아는 몽골인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신다. “참으로 이 분들이 큰일을 하고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해 본다. 코리안 드림을 가슴에 품고 우리나라를 다녀 간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앤티코리안이 되어 한국 관광객을 협박하고 린치를 가하며 한국의 명예를 훼손시킨다는 신문기사를 다시금 떠올려 본다.
몽골에는 약 300여명의 한국인 선교사들이 나와 계신단다. 그러나 몽골인들은 대부분 불교의 한 종파인 라마교 신자들이고 라마교가 국교처럼 되어 있어서 복음을 전파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몽골인구의 약1%인 25,000여명의 근로자가 합법 또는 불법으로 체류하면서 3D업종에 시달리며 ‘코리안 드림’을 키워가고 있다. 이들은 비교적 몽골사회에서 식자층에 속하며 이들이 몽골로 송금하는 외화가 몽골 GNP의 16%나 된다고 한다. 몽골이 한국에 대하여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리하여 몽골은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기대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한국과 몽골과의 국가 연합론까지 제기되면서 몽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운영되는 ‘나섬공동체’ 는 17개국의 외국인을 대상으로 4개 영역으로 나누어 주일마다 예배를 보고 환자를 무료로 진료해 주며, 법률구조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몽골인들에게 집중적으로 선교를 하며, 이들의 자녀(공식 집계로는 한국에 몽골 어린이들이 약 2500여명 와 있다고 함)들을 교육시키며 신앙인으로 기르고 있다. 예쁘고 착해 보이는 몽골어린이들이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읽어 본다. 이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고 귀국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수백 수천 명의 선교사를 파견하는 것보다 얼마나 효율적인 선교 전략이 아니겠는가?
실명이 되신 힘든 몸으로 나섬공동체를 이끌고 계시는 유해근 목사님의 모습을 뵈올 때마다 하나님의 섭리가 꼭 이래야만 하시는지 감히 원망도 해본다. 하나님의 은총이 목사님과 모든 사역자들에게 함께하시길 기도한다.
우연히 몽골여행에 동참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요 섭리라고 생각해 본다. 인간의 발길이 별로 닿지 않은 대자연의 신비를 가슴 가득 느끼면서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실천 현장을 체험한 이번 여행이야말로 우리 부부에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요 보람이리라.
21일 새벽 한국으로 오는 배행기속에서 5박6일의 여행일정을 꿈처럼 되새김임하다가 깊은 잠에 빠져든다.
동행한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건강과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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